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세월호 참사와 그 구조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났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 사퇴한 총리의 사의 반려로 결말을 맺었지만 그동안 총리 후임 임명과정에서 나타났던 정돈되지 않은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 등 나라 전체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슬기로움으로 한데 뭉쳐 역경을 이겨낸 저력 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열사의 중동건설 현장에서, 포화가 빗발치는 월남에서도 땀과 피를 흘리며 나라 발전에 이바지했던 사실을 우리는 아프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가공할만한 우리 국민의 능력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번번이 국민을 위기로 몰고 가는 위정자들과 정치권의 후진성이다. 그러나 안타깝다고만 하고 제자리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잘, 제대로 가야한다. 정치와 행정이 후진적이라고 탓 하지 말고 선진화된 국민들이 끌고 가면 된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제 우리는 힘을 모아 새로운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 아주 대단한 각오로 다시 뭉쳐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전근대적 후진성, 부조리, 불합리, 비상식적, 비민주적 상황들에 대해 총체적인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지만,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는 말아야 한다. 서두르다보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후진국형 사고가 일어나고 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두 달간 후임 총리를 정하지 못했던 이 기가 막힌 현실에 모두가 놀라고 있다. 그러나 별로 놀랄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은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 선진국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인구가 많아 총GDP가 세계 13위권 안에 들기는 하지만 1인당 GDP로 보면 OECD 34개국 중 23위로 그리스보다 약간 높은 수준일 뿐이다. 중국의 총GDP가 높다고 누가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하는가? 어디를 봐도 어느 지표를 봐도 우리는 아직 후진국이다.
게다가 국가의 발전 형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고르게 동반성장한 것이 아니라 경제는 급속도록 발전되었으나 정치나 사회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절름발이형 발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밥상에 쌀밥과 은수저는 놓여 있는데 밥상은 다리가 하나 없고 국그릇은 깨져있으며, 김치보시기에는 치즈가 같이 들어있는 꼴이다. 쌀밥과 은수저가 있다 해서 우리는 그저 그걸 부잣집 밥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상다리를 고치고 새 국그릇으로 바꾸고 김치와 치즈를 갈라놓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작업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 선진화되어야 한다. 민주적 선출과정을 거쳤다 해서 정치도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우리 정치의 선진화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완성단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수백 년의 장구한 세월을 두고 왕권과 국민간의 투쟁에 의해 쟁취된 것인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왕정의 종식이 우리 국민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제강점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후의 민주주의 도입 역시 외세에 의해 식수된 것이기 때문에 그 역사가 대단히 짧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군사독재가 종식된 것은 분명히 민주주의로 가는 커다란 걸음이었기는 하지만 그 것이 민주주의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의식이 민주화되어야 하고 정치의 운용이 민주화되어야 하며 여기에 더해 사회의 분배 구조 역시 민주화되어야 비로소 민주주의의 완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민주화 또는 선진화가 더디게 진행된다 하여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36년간 일제강점기의 혹독함을 이겨냈고 한국전쟁을 견뎌냈으며,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고 또 군사독재 체제를 붕괴시킴에 있어서도 언제나 국민이 선봉에 서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1997년 외환위기를 장롱 속 금붙이까지 끄집어내면서 이겨낸 국민이 우리 국민이다.
우리는 지금 빚어지고 있는 이 위기 역시 저력으로 이겨내고 새로운 나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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