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호(황간초등학교 교장)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 마음도 덩달아 설렌다. 요즘 고학년들은 담임선생님이나 친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수련활동행사에 관심이 많다. 아직 수련활동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건만 언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선생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물어물어 알아낸다. 그들은 작년 그맘때쯤의 경험과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정보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확실한 일정을 알아내면 저들은 바로 팀을 만들어 모닥불 캠프 때 발표할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그래서 삼월이 채 가기도 전 수업 끝난 교실 뒤편에는 최고 인기 그룹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과 댄스 연습으로 요란스럽다.
오월이면 어김없이 학교마다 운동회가 열린다. 조용한 시골 학교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신나는 음악이 동네에 울려 퍼진다. 아이들은 새벽부터 날씨 걱정에 연신 밖을 기웃거리고, 어머니는 밤새 준비한 재료로 맛있는 김밥을 싸느라 분주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한 달 넘게 뜨거운 가을 햇살아래서 운동회 연습을 했다. 남자들은 짝 체조를 하고, 여자들은 부채춤을 추었는데 해가 질 때까지 갖가지 대형을 만들었다 풀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운동회가 끝나면 너나없이 모두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곤 했다. 요즘은 운동회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운동회를 한다고 해도 사전에 연습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운동회 종목도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즐기며 동참할 수 있게 선정한다. 하지만 탕! 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 울려 퍼지는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여전히 팔뚝에 닭살이 돋고, 슬금슬금 오줌을 지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학여행은 고학년 졸업생들에게 특히 가슴 설레는 행사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지혜와 슬기를 엿보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함께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여행이야 말로 학창시절의 추억을 키우는 최고의 행사라 하겠다. 옛말에 溫故知新(온고지신)이고 했다. 옛 것을 배워서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뜻이다.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인 동시에, 가슴 속에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을 다지는 의미있는 행사이다. 더욱이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지새면서 겪는 다양한 추억들은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옛 친구들을 만나면 누구나 수학여행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기며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 상반기에 이 모든 행사들이 전면 중단되었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아니 교실 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난 4월 진도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내려진 교육당국의 안전에 대한 조치는 행사 중단이었다. 학기초에 세웠던 모든 체험학습 계획들이 교실 안에서 이루어졌다. 세월호 사건은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슴 아프고 목이 메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날벼락 같은 일이어서 차마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어려운 심정이다. 옆에서 바라보는 우리 마음이 이럴진대 가족들이나 그 당사자들의 마음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의 안전불감증과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는 부실한 관리가 빚어낸 최악의 사건이었다.
이제 뒤늦게나마 자기의 꿈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바다 속에 묻은 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로 인해 영문도 모른 체 교실에 갇힌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요 몇 달 동안 이 땅의 어른으로서 내가 저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얘들아, 미안하다"는 이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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