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과 햇살 사이 ‘은밀한 계곡’… 양구를 찾다

DMZ 평화누리길 따라 걸으며 삶을 반추하며 역사를 되새기고
‘국토 정중앙’의 원시 청정자연 만끽… 최고 트레킹 코스로 각광
‘을지전망대’에 서면 치열했던 ‘펀치볼 전투’ 다시금 보는 듯
양구에 부는 ‘문화예술 바람’… 이해인 시문학관으로 ‘발걸음’


여름이면 가고픈 전국의 계곡과 명승지 가운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남긴 전쟁의 상처가 역설적으로 사람의 흔적이 없는 아름다움을 남길 수 있게 한다. 강원도 양구는 이런 역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50여년간 철조망과 지뢰밭이 보호했던 두타연은 원시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청정지역.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이때 때 묻지 않은 순수의 길을 걷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동양일보는 ‘7월 길 여행’으로 DMZ 두타연 평화누리길을 찾아 떠난다.


● 구석기부터 DMZ까지 시간여행
짙은 녹음 산의 신선한 공기 속을 걷는 일은 그 자체로 최고의 ‘힐링 여행’일 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독특한 생태계를 오롯이 간직한 청정지역이면 감흥이 더욱 남다르다. ‘두타연’은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을 거닐고 빼어난 계곡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코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출입을 통제된 이곳은 한반도의 가장 청정한 원시의 자연 그대로를 보여준다.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북쪽에 위치, 휴전 뒤에도 50년간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던 두타연 일부 구간이 개방된 것은 2004년이다. 2009년 관광코스로 널리 알려지면서 원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생태 관광지로 각광받아왔다.

두타연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강원도 양구의 깊은 골짜기를 흐르다가 굽은 한 부분이 절단되면서 만들어진 폭포 아래 너른 소를 일컫는다. 10여m 높이의 아담하면서 우렁찬 폭포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는 소, 그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이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선사한다.

두타연 탐방은 이목정안내소나 반대쪽 비득안내소에서 시작한다. 예전에만 해도 두타연에 들어가려면 예약과 해설사 동행이 필수였으나, 지난해 11월부터 절차가 간소해져 당일 개별 관광이 가능하다. 출입 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안내소에 제시하고, 위치 추적 태그가 부착된 출입증을 받아 착용하면 끝이다.

두타연 입구는 이목정안내소에서 3.7㎞ 지점의 두타연 주차장 맞은편이다. 두타연 주차장까지 도보나 자전거, 차량 이동이 모두 가능하며, 자전거는 안내소에서 대여해준다.

입구의 두타연 갤러리 앞에는 소지섭길 안내판과 소지섭의 손을 본뜨기 한 조형물이 있다. 몇 년 전 드라마 ‘카인과 아벨’을 양구에서 촬영한 것이 인연이 되어 DMZ 배경 사진 에세이 ‘소지섭의 길’을 출판했는데, 그가 좋아하는 숫자 51에 착안해 총 51㎞ ‘소지섭길’을 만든 것이다. 두타연도 그 코스 가운데 하나가 된 셈인데, 소지섭의 손(조형물)을 잡아보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 한류 팬도 제법 있다고.

두타연 주차장 맞은편에 두타연이 있으나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일부러 두타연 상류와 하류를 한 바퀴 돌아 두타연으로 가보자. ‘지뢰’ 표지가 양쪽에 붙은 흙길을 따라 걷다가 언덕 위 전망대를 지나면서부터는 나무 데크가 이어진다. 데크에서 계곡 쪽으로 내려가면 폭포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고, 출렁다리(두타교)를 지나 다시 두타연 쪽으로 올라가면 폭포를 맞은편에서 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폭포와 소가 발아래 있다. 옛날 두타사라는 절이 근방에 있었다 하여 이름 붙은 두타연은 소가 깊어 검푸르다. 폭포 위쪽은 물이 바위틈으로 굽이치는데, 그 형상이 한반도와 비슷하다. 물이 맑고 깨끗한 두타연에는 오염되지 않은 곳에 산다는 열목어를 비롯해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탐방로를 걷는 동안 금낭화, 큰꽃으아리 같은 들꽃은 물론 올괴불나무, 쪽동백, 회목나무 등 다양한 식물도 관찰할 수 있다.


● 때 묻지 않은 원시자연을 만나다
두타연만 둘러보기 아쉽다면 평화누리길도 걸어보자. 이목정과 비득안내소 사이 계곡을 따라 조성된 평화누리길 12㎞ 구간은 트레킹이나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다. 양구전투위령비, 조각공원, 쉼터 세 곳과 포토 존 등이 마련되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두타 1·2교에서 멋진 전망도 즐길 수 있다.

양구에 가면 두타연 외에도 생태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휴전선 인근 남한 최북단에 자리한 대암산 기슭의 양구생태식물원이 대표적이다. 중부 이남 지역에서 보기 힘든 희귀식물이 많이 분포하는 양구는 식물지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양구생태식물원에서 다양한 북방 식물과 고산성산지 습지식물, 멸종 위기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입장은 무료, 놀이터와 피크닉 광장도 마련되어 아이들과 함께 찾으면 좋다.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된 산양을 코앞에서 보고 싶다면 양구산양증식복원센터로 가보자. 멸종 위기에 처한 산양을 보호하고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자연 암벽 지대에 만든 센터로, 산양 사육장과 야생동물 치료 센터, 조류장, 구조 산양 회복실,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방사장 울타리 주변의 관찰로를 따라 걸으며 바위에 우뚝 서 있거나 풀을 뜯는 산양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멀찍이 피하는 녀석도 있고, 아랑곳없이 풀을 뜯는 녀석이나 사람이 건네는 풀을 받아먹는 대담한 녀석도 보인다. 꽃사슴 사육장, 양구의 주요 야생동물을 박제해서 보여주는 야생동물 생태관도 있다.

여름철 인기 명소는 해발 800m에 자리한 광치계곡이다. 우거진 원시림 아래 차가운 계곡물이 흘러 물놀이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광치자연휴양림에서 시작되는 대암산 생태 탐방로 중에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2시간 30분 코스나 양구생태식물원까지 이어지는 5시간 코스도 도전해볼 만하다.

● 전쟁의 상처 아문자리 문화의 꽃 피다
양구는 6.25 전쟁 당시 치열했던 9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온전히 살아남지 못했으니 그곳에서 산화한 젊은 목숨이 얼마나 많았을까. ‘펀치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해안분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는 전쟁의 상처를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곳.

비무장지대(DMZ) 철책 위에 세워진 을지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불과 38㎞ 거리. 북녘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금강산 봉우리도 육안으로 보인다. 가깝지만 가장 먼 땅, 바쁜 일상에 잊고 있던 ‘통일’이란 단어를 곱씹어보게 한다. 전망대 출입 신청은 해안면 양구통일관에서 당일 오후 4시까지 받는다. 양구통일관 앞에는 전쟁 당시 주요 전투 9개를 재조명한 양구전쟁기념관이 있다.

양구에 문화예술의 바람을 몰고 온 박수근 미술관과 ‘이해인 시문학의 공간, 김형석ㆍ안병욱 철학의 집’(약칭 이해인시문학관)도 양구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 화백의 생가 터에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에 가면 거칠게 깎은 화강암을 쌓아올린 건축물에서 작가의 화풍이 느껴진다. 박수근의 삶과 가족에 대한 전시물을 둘러보고 안쪽으로 들어서면 드디어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수근의 작품은 작은 유화 한 점이 수억 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미술관을 개관할 당시 진품 유화는 한 점도 없었지만,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기증 받은 작품 4점을 포함해 모두 7점의 진품 유화가 전시된다. 유화 외에도 스케치, 목판화 등을 볼 수 있다.

박수근미술관에서는 8월 3일까지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열린다.

‘이해인 시문학의 공간,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약칭 이해인 시문학관)은 양구에 또 한 번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파로호 습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구읍 동수리에 위치한 시&철학의 공간은 지상 3층 규모의 문학관 1동과 정원, 포토존 등으로 꾸며져 있다.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양구출신 이해인 시인의 문학과 한국 철학의 거장 김형석·안병욱 선생의 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2012년 12월 1일 개관됐다.

이해인 수녀를 기리는 시문학관에는 시인의 육필 원고와 시집, 소장품 등을 전시한다. 이곳에서 조그맣게 시를 읽어보자. 아름답고 평안한 시구들이 안보, 지뢰, DMZ 같은 단어로 바짝 긴장했던 마음을 평화롭게 다독인다.

2층은 철학의 집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철학자 김형석·안병욱 선생의 삶과 사상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두 철학자 모두 평안남도가 고향이라 가까운 양구에 철학의 집을 연 것.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두 철학자의 명언을 읽으며 잠시 사색에 잠긴다. 3층에는 전망대와 세미나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의 동서남북 각 끝 점이 교차하는 국토 정중앙에 위치한 양구. 천체관측과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토정중앙천문대는 ‘국토 정중앙’ 양구가 자랑하는 명소다.

천문대 앞에 캠핑장이 조성되어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위해 찾는 가족 캠퍼들이 많다. 천문대에서 산길로 950m 올라가면 국토 정중앙 지점을 상징하는 휘모리탑이 있다. 경사가 완만해 아이들 손을 잡고 다녀오기 적당하다. 

● 여행정보

추천 여행 코스
▷당일여행코스=두타연→양구산양증식복원센터→양구생태식물원
▷1박2일 여행=<첫째 날> 두타연→박수근미술관→국토정중앙천문대→광치자연휴양림(숙박)  <둘째 날> 을지전망대→양구전쟁기념관→양구산양증식복원센터→양구생태식물원

● 가는 길= (서울방면)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 IC→46번 국도→배후령터널→추곡터널→웅진터널→양구읍→31번 국도→460번 지방도→고방산리→두타연
● 동양일보 7월 길여행= 7월 19일(토) 오전 7시 청주시 상당구 충청대로 103(율량동) 동양일보 앞 출발.
(문의 cafe.daum.net/dyway·동양일보 문화기획단 ☏043-21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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