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시인)

1948년 7월 17일, 올해로 66주년을 맞게 되는 제헌절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8명의 제헌국회가 들어서고,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로서 그 근간이 되는 자유민주헌법을 제정. 공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제헌절은 5대 국경일중의 하나다. 의미로 봐서 가볍게 여길 만한 국경일은 없지만 5대 국경일 중에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다.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휴일 여부를 떠나서 초등학교 학생의 절반이 제헌절이 무슨 날인지 모른다고 하는데 있다. 헌법은 한 나라의 집이고 법의 기둥이다. 헌법은 최고의 입법기관에서 국민이 스스로를 규정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토대이고 울타리다.

1987년 12월 29일 9차 개헌, 헌법 전문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중략)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세월 호 참사’가 쉽게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올해는 특별히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를 마음에 새기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또 어떤가.
1항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간단한 헌법 조항이 지켜지고 실행되기까지 참으로 많은 이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다. 미국의 독립운동가 토마스 제퍼슨의 표현대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다시 헌법 전문으로 돌아가 보자.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다. 미사려구(美辭麗句)도 군더더기도 없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도리이고 국민적 합의다. 찬찬히 새기고 읽어볼수록 가슴이 답답한 것은 피로써 지켜내고
땀으로써 이뤄 낸 헌법이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가 창궐하는 것 같아 막막하고,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어느 구석에서 찾아봐야 할지 힘이 빠지는 요즘이다.
6.4지방선거 후 지방의회 구성의 결과, 앞으로 있을 7.30 보궐선거 등등에 있어 ‘안 봐도 비디오’라는 냉소적 시각이 있는 것도 우리가 오랫동안 ‘법치’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더 말하면 무엇 하겠는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마저 보수와 진보성향으로 갈리고 그것도 어느 일방으로 편향돼 있으니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 탄핵’이니, ‘수도권이전’이니 헌법으로 세워 논 자유민주국가의 틀에 맞느냐, 국가경영의 중대한 방향을 벗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중차대한 법리를 다루는 헌법재판소가 다뤄온 사항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헌법재판관 선정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 정당추천 3명(여당 추천 1명, 야당추천 1명, 공동추천 1명), 그리고 나머지 3명은 대법원장이 추천하게 되어있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을 배려했다고는 하지만, 한 자리 숫자 덧셈, 뺄셈만 할 줄 알면 답을 알 수 있는 구조다.
 ‘제헌절노래’ (정인보 작사/ 박태준 작곡)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삼천 만 한결 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 맞추리라/이 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대한민국 억만년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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