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힐링토크 시리즈 1

동양일보는 매주 금요일마다 7회에 걸쳐 힐링토크 대회에 참가한 여성 출연진 7명(팀)의 이야기들을 대상부터 으뜸상, 엄지상, 힐링상 순으로 지면에 싣는다. 대상을 수상한 이영미씨는 이날 대회에서 서예퍼포먼스를 하며 강렬하게 무대에 등장한 뒤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자작시 ‘우리 함께 가요’를 낭송했다. <편집자>


이영미(서예가) <사진/임동빈>

저는 제 목소리가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때 항생제 부작용으로 청신경이 마비돼 소리를 못 듣게 됐습니다. 줄곧 서울과 부산에서 살다가 청주에는 24년 전에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마음 부자가 된 듯한 넉넉함이 듭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할 때 택시를 타면 제 억양이 이상하니 운전사가 “어디서 왔나요?”라고 질문하는데 전 가만히 침묵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답니다. 전혀 못 듣기에 눈치코치로 입모양을 보아야 하는데 운전수 뒤통수만 보이니까요. 솔직하게 못 듣는다고 대답하면 “아유 어쩌다 귀가 나빠졌노? 결혼은 했고? 아이구 용해라 귀가 안들리는데 어떻게 결혼을 했나? 아이들은 귀가 괜찮아?” 하고 끝도 없이 질문을 해요. 그래서 다음부터 택시기사가 “어디서 왔나요?”하고 물으면 “집에서 왔어요. 저 아프니 그냥 가주세요” 하고 대답해요.
솔직해질수록 가는 길이 험해지는 것이 우리나라 같아요. 그 사회를 바꾸는 것보다 내가 바뀌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뒤부터 매일 열심히 옥상에서,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회생활 처음 할 때는 10분도 말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렇게 여러분과도 말을 할 수 있게 됐으니 꿈만 같습니다.
저는 16살 때부터 붓을 잡아 지금 40년 가까이 돼요. 붓을 잡았던 이유는 몸이 아프고 가난하더라도 하루 종일 신문지만 갖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여성가장이 되고 작가가 되어서,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지역사회에 나누려고 주성대 사회교육원에서 무료서예반 강좌를 개설했는데 글씨를 배우러 온 여성장애인들 대부분이 글자를 모르는 비문해라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성장애인권운동을 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참 많이 힘들었어요. 힘들어 혼자하기 어려울 때 제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간 사람들은 힘센 남자들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돈도 아니고, 마음이 열린 청주지역의 여성들이었어요. 특히 언론계에 근무하면서 임신 중이었던 비장애 직장여성이 10년 가까이나 함께 일을 해주어서 큰 힘이 되었어요.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되었는데 그 아기를 제가 백일동안 안아주어 그 여성은 성폭력상담교육을 받아 충북에서 최초로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원이 되었고, 상담소가 만들어졌어요.
인권활동을 하기 시작하니 예술가들이 질문을 해요. “왜 작가활동만 해도 잘 사는데 구태여 힘든 장애 인권 활동을 하냐?”고요. 그런데 잘 산다는 건 뭘까요? 같은 장애인들도 또 이런 질문을 해요. “당신은 장애인편인가? 아니면 비장애인인가?” 그런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는 것일까요?
참 소통이 안 되더라고요. 소통의 반대말은 뭘까요? 꼴통, 먹통, 불통? 아니에요. 소통의 반대말은 경직이에요. 지금도 우리 여성들은 우리의 딸들이 제대로 숨쉬기 위해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든 충북의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13년간의 여성 장애인 인권 활동을 접고 저는 당장 두 딸의 학비를 책임지는 여성가장이 되었어요.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되었고 저는 적응이 힘들었지만 ‘술’의 힘으로 이겨냈어요. 그 술은 예술이란 독한 술이었지요.
여성가장으로, 여성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평생학습으로 인한 역량의 향상이 큰 도움이 돼요. 그래서 저는 불혹부터 부지런히 대학원 공부도 하고, 학부를 졸업하면 다시 또 다른 학부에 편입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해나가고 있어요. 현재 사회복지사, 예술치료사, 심리상담사, 문화예술교육기획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가 되기도 했어요.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지금 여기 당신들과 사이좋게 이 시대에 함께 따스한 손을 잡고 동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은퇴 후의 인생을 뜻하는 ‘인생이모작’이 유행이라지요. 이모작지원센터도 전국에서 많이 생겼고요. 저는 이 땅의 딸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삼모작 인생’을 대물림해주고 싶어요.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배우고 일하는 이모작에만 그치지 말라는 거지요. 잘 배우고 일하면서도 세상과 나누고 즐기고 하면서 내일을 여는 오늘의 멋진 주인공인 삼모작 여성으로 살아가라는 거지요.
꾸준히 배우고 좋은 일거리를 부지런히 만들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큰 에너지를 주고 그 에너지가 바로 세상에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거든요.
<정리/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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