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마른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엊그제 초복(初伏)을 지나더니 오늘은 대서(大暑)이다. 말 그대로 큰 더위다. 대서는 여름 무더위를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으로 나누었던 것과 같이 소서(小暑)와 대서(大暑)로 나눈 것이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다. 예로부터 이맘때가 되면 삼복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다.
  강릉의 기온이 36도가 넘었단다. 불볕더위,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이제 여름방학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가슴 설레며 휴가 계획을 세우고, 신나게 산으로 바다로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요즈음 북캉스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여름에 피서나 휴양을 위해 떠나는 휴가라는 의미의 바캉스(vacance)와 책(book)이라는 말의 합성어인 북캉스(Bookcance), 즉 휴가를 책과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책 읽을 시간을 갖지 못 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살아온 사람들이 휴가철을 맞아 책을 구입하고, 읽으면서 책 속에 빠져 여가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맑고 찬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산바람을 맞으며 책장을 넘기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행복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도 얻게 된다면 메마르던 생활에 윤기를 더하는 일이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북캉스를 즐기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휴가철에 읽을만한 인기 전자책과 종이책을 최대 80%까지 할인해주고 풍성한 경품을 증정하는 기획전을 여는가 하면 전자책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도 실시한단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여름이 독서의 계절로 떠오른 것이다.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과 여름휴가 중인 직장인들이 바빠서 미루어 두었던 독서를 휴가 기간에 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더구나 예전 같았으면 무거운 책이 여행가방의 무게를 더하여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전자책 단말기 하나면 그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으니 참말 편리한 세상이다.
   독서는 이제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013년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채 못 읽는다는 것이다.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은 71.4%다. 이는 2011년의 66.8% 보다 4.6% 증가한 수치지만 EU의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독서량 감소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02년 8000여 곳이던 동네 서점도 2014년 1000여 곳밖에 남지 않았단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압도적으로 1위인 반면 1인당 독서량은 유엔 191개 회원국 중에서도 166위에 머물러 부끄러운 모습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다. 독서량이 개인 성장의 지름길인 것은 물론 국력이 되는 세상이다.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정부가 2018년까지 공공도서관을 현재의 828곳에서 1100곳으로 늘린다고 한다. 또 도서관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장서와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빠져 책과 점점 멀어져 가는 세태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멀리 떠나는 바캉스도 좋지만 경제 불황으로 여름휴가를 알뜰하고 소박하게 보내려는 북캉스 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조용히 실속 있게 자기 수준에 맞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알뜰 북캉스도 좋을 것 같다. 
   다들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떠난다고 해도 이 더위 속에 차 막히고, 가는 곳마다 사람으로 넘쳐나는 고생을 생각하면 떠난다는 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다면 시원한 도서관에 편하게 앉아 읽고 싶었던 책 속에 빠져보는 것도 진짜 북캉스가 아닐까. 그것조차 안 되면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소파에서 뒹굴다 대야에 찬물 넘치도록 퍼놓고 발 담그며 책장을 넘기는 북캉스도 여유롭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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