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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여름휴가
  • 동양일보
  • 승인 2014.07.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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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애(충북대교수)

 마른장마가 계속되어 무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연일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고 밤에도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되어 밤잠을 설친다. 피서를 위한 여름휴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씨다. 이럴 때는 비라도 한줄기 오고 나면 좀 시원해질 텐데.  갈라진 논바닥을 쳐다보며 마음이 타들어가는 농민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장마 비가 죽죽내리기를 바라고 있다.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활짝 개방된 한옥에서는 앞뒤에서 맞바람이 불고 햇볕으로 달구어진 뜰 앞에 물 한 바가지를 퍼붓고 나면 금세 땅의 열기를 식혀주어 그런대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무그늘에 둘러앉아 차가운 지하수에 담가두었던 참외나 수박을 잘라 먹던 맛이 우유로 만든 눈꽃 빙수 맛에 비할 수 있을까? 육류를 그리 자주 먹지 못했던 시절,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면서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가며 먹었던 펄펄 끓는 삼계탕도 여름을 이겨내는 비법 중 하나였다. 체온이 올라가지 못하게 땀을 내어 피부에서의 증발을 유도하는 것은 더위를 이겨내는 필수 처방인 셈이니까. 커다란 어미닭의 배 속에 찹쌀, 대추, 인삼, 밤 등을 차곡차곡 채워 넣고 터질세라 실로 꿰매는 어머니의 바느질(?)모습도 신기했었다. 집집마다 건강에 좋다는 서로 다른 약초를 넣고 물을 부어 한 솥 달여지는 동한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오늘은 닭다리가 누구의 그릇에 담겨질까도 초미의 관심이었다. 다리 살이 아버지의 그릇엔 항상 담겼고, 어머니는 세 번의 복날에 다른 식구들에게 번갈아 가며 닭다리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다. 
  무심천은 내가 어릴 적 여름을 나는 데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아이들에겐 여름방학 단골 숙제였던 곤충채집과 식물표본 만들기의 보고요, 하루 종일 질리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였다. 저녁식사와 일을 마치고 난 어른들은 제방의 큰 나무아래 놓인 돗자리나 들마루에 모여 앉아 부채로 모기를 쫒아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심천 웅덩이는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청주 시민의 노천 목욕탕이었다. 별도의 울타리가 없었지만 여탕과 남탕은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질서도 생겼다.
  고무신으로 배를 만들어 띄우며 물장구치고 놀던 아이들은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 무심천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자기 동네를 멀리 벗어나기 일쑤였다. 멀다고 해야 겨우 지금의 버스 정류장 몇 개에 불과하지만. 어둑어둑 해가 저물어서야 비로소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는 배고픔과 불안에 떨었다. 어두워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녀들 이름을 부르며 부모들은 남북으로 갈라져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불안에 떨다가 부모를 만난 아이들의 얼굴은 안도와 기쁨의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꾸중과 간곡한 당부 말에 그 후 며칠간은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하려 노력하지만, 냇가에서의 즐거움은 그 약속을 오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지내온 무심천 피서는 아직도 즐거운 추억거리들로 남아있다.
  치아를 점검하기 위해 치과에 갔다가 휴가라서 다음 주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서야  여름휴가 성수기임을 알게 될 만큼 수년간 여름휴가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고생길이었다.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아스팔트 도로의 복사열, 휴가 인파로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차량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더해지고, 집보다 나을 것 없는 숙박지의 불편함에 불친절과 바가지요금이 더해지는 것은  출발을 후회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가끔 다녀 온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북적대는 공항의 소란함과 너무 빡빡하게 짜인 일정과 의도하지 않는 쇼핑들이 새로운 세계의 설렘과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가기도 했다. 전 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 나의 핑계거리다. 요즘은 휴가를 보채는 아이들이 없어서 다행이다.
   폭염주의보가 계속되는 요즘, 통풍이 안 되게 겹겹이 막혀있는 고층건물과 대낮에도 조명이 필요한 실내구조는 냉방병을 감수하면서도 냉방기를 가동을 멈출 수가 없다. 답답한 건물에 숨 막혔던 직장인들에게 모처럼 찾아 온 여름휴가는 에너지를 재충전할 절호의 기회이다. 휴가가 끝나도 부담 느끼지 않을 만큼 경제적 비용도 고려하면서,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충분히 해소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 떠난 휴가지에서 또 다시 사람들과 부딪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도록 기쁨 넘치는 행복한 휴가를 보내기 바란다. 가뭄을 걱정하는 농민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면 더욱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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