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매년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역축제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다.
거의 모든 축제가 많은 사람을 끌어 모아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축제를 지향한다.
오늘날 경쟁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축제는 오락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역사성이나 개성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벤트사에 의해 판에 박힌 프로그램으로 추진되면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민의 삶과 조상들의 삶이 접목돼 있지 않은 축제는 축제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방문객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주인이 빠진 행사성 이벤트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충북에도 크고 작은 지역문화축제가 시작됐다.
지역 특산물 잔치까지 각 시ㆍ군마다 서로 뒤질세라 앞 다퉈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 지역축제가 많다는 것 자체를 흠잡을 수는 없다.
문제는 관 주도의 실적 위주로 흘러 축제의 성격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지역 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뿌리 없는 행사, 실속은 없고 포장만 근사한 행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뜨내기 관광객들의 놀이판이나 장터로 전락한 행사가 부지기수다.
지자제 도입 이후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수익을 올려보자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축제를 신설했다.
축제의 상차림을 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베껴먹기를 하다 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이름만 바꿔 달면 어느 축제가 어느 축제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역축제가 난립하는 데는 자치단체장의 선심 행정도 한 몫을 한다.
지역 주민을 자연스럽게 동원할 수 있는 이벤트성 행사는 단체장의 치적 홍보와 얼굴 알리기의 주요 장이기 때문이다.
관 주도로 축제가 치러지다 보니 문화를 잘 모르는 공무원들과 행사를 기획한 전문가 집단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축제가 끝난 뒤 적자가 발생해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긴 사례도 있다.
지역 특성을 상징하는 정체성의 확보 없이 천편일률적인 유희성 행사로 전락한 구태의연한 축제는 지역민들에게는 축제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모든 축제는 주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단체장들의 치적 쌓기 내지 생색내기용 축제가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직접 뽑힌 시장, 군수들은 지역축제에 유독 신경을 쓴다.
축제에서 빛이 날 수록 자신의 치적이 높아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축제의 성공 여부는 곧 단체장의 능력이 돼 버렸다.
주민들은 관(官)이 벌인 굿판에 끌려나온 구경꾼에 불과하다.
끝나면 남는 게 없다.
그것은 축제의 기본인 감사의 마음이 빠져 있고 주민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축제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뺏으려 할 뿐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들은 축제가 불편하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혈세가 드는 행사는 생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불편만을 안겨줘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안팎의 전문가들이 보조하는 판박이가 아닌 창의적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지역 만의 특색을 살리고 지역 구성원 모두의 뜻과 신명을 하나로 모아 축제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움직이는 축제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이 기다려지는 축제가 돼야 한다.
치적을 알리고 홍보하려는 단체장의 조급함이 끼어들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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