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란(귀농 여성)


밀짚모자에  권해란씨는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등장한 권해란씨는 줄곧 서울에서 살다 2년 전 증평으로 귀농했다. 그는 지난 7월 15일 충북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36.5℃ 힐링토크’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소재로 한 1인극을 선보였다. <사진/임동빈>


“앗! 뜨거!”
“에이, 조심 안할겨.” 
“어디 다친 디는 없는겨.” 
“그릇 튀기다 일 나것어.”
“호호, 썽님 내가 어찌될까 걱정인겨.”  
“호호, 세상에 우리 썽님 뿐이 없어. 쪽쪽.”
여기는 충북 증평의 여성회관 지하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다. 주방에 식기세척기가 없어 항상 어르신들의 위생을 위해 그릇을 모두 삶는다.
“뭐해, 상분아! 국 좀 더 줘. 김치도 더 푸고. 그릇이 모자른겨? 더 씻고 튀겨.”
주방은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엉덩이를 흔들흔들하며 “오, 예스~”
국을 끓이는 형님은 등이 굽었다. 너무나 안쓰러워 등을 더듬더듬.
툭툭 튀어나온 척추 뼈는 그녀 삶의 골이랄까? 뒤에서 그 형님의 등을 껴안아 주었다. 마음이 아려온다.  
자원봉사의 달인이신 지연씨는 아예 차 트렁크에 여행도구들이 아닌 장화와 장갑 앞치마를 필수품으로 소지하며 어떤 장소에서든지 자원봉사를 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녀는 늘 허리가 아파 배식대 위에 허리를 기댄 채 마냥 웃는다.
그들이 늘 웃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나는 여태 무엇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빨리 설거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복받쳐 오르는 눈물에 컥컥거렸다.
옆에 있던 상분 형님은 “왜? 할아버지 할머니들 불쌍해서 우는겨?”
길게 답변했다가는 펑펑 울 것 같아 그냥 끄덕 끄덕거렸지만 눈물은 설거지통에 뚝뚝 떨어졌다. 눈물을 닦은 소매도 슬픈지 흐느적 흐느적거렸다.
70세 노모의 애타는 전화 속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자원봉사현장에서 찾았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슬퍼했던 지난 시간들이 이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다.
봉사자 분들은 그 어떤 분들이 와도 모두 살갑게 받아들이며 많이 먹고 가라고 한다. 여성회관의 지하이지만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매주 금요일만 기다려졌다. 월요일, 화요일… 왜 이리 날짜가 가지 않는지.
천사님들과 같이 어르신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그 순간이 가슴 떨리도록 쿵쾅쿵쾅 한다.  가슴이 싸하다.
익숙한 자원봉사원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식사 기다리는 로비에서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하는 노래를 춤추며 불러드려야겠다.
또 장애인 복지관에 밑반찬 봉사, 노인요양원에 노래 봉사, 노인복지관 배식봉사와 더불어 경로당 화장실 청소, 경로당 노래 봉사 등 꾸준한 자원봉사를 할 것이다.
자원 봉사를 하며 과거의 허물을 벗으려 네모난 나를 내려놓는다. 나를 찾는 행복여행은 자원봉사로 새로운 살이 돋아난 소나무의 속 껍질처럼 툭툭 터진다. 내 안의 나를 깨우며 태아 때의 그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며 속삭인다.
‘해란아! 일어나 봉사활동 가자!’
자원봉사로 새로운 행복! 퍼즐여행이 시작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나를 찾았다. “해란아! 사랑합니다. 천사님들 사랑합니다.”
나도 내 차 트렁크에 청소도구와 앞치마, 장화, 고무장갑을 필수품으로 싣고 다닐 것이다.
“여러분! 또 트렁크에 넣고 다닐 것이 또 있나요?”
평생 행복한 직업을 찾은 벅찬 감동이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자원봉사 함께 하지 않으실래요?  행복은 함께여야 합니다. 같이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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