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지난 4월, 21세기 문명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차마 말로 표현하기조차 싫은 충격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들이 발생했다. 육군 28사단 윤일병 사망사건과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이 넉 달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 전모가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적군도 아닌 전우 그리고 또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니 사람이 더 이상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들이다. 더구나 그 사건들의 직접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직은 세상의 풍파에 찌들어버릴 나이도 아닌 10대, 20대라는 사실에 더욱 절망스럽다. 어쩌다가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잔인하고 어처구니없이 사람이 죽어가야 하고, 그런 만행이 진행되는 과정이 철저하게 외면될 수 있었으며, 사건의 전모가 제 때에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단 말인가?
금쪽같은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감히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인 자식이 이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 또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끔찍한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비뚤어진 음주문화, 잘못 인식된 위계질서, 폭력, 왕따, 성(性)의 상품화 등 인간성 상실이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동료가 부당하게 갖은 고초를 당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사회, 미성년자가 숙박업소에 끌려 다니며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내 자식은 왕따 당하지 않게 하려고 온갖 신경을 다 쓰면서 남의 자식이야 무슨 짓을 하던 어떤 일을 당하던 아무 관심이 없는 우리다. 그러나 왜 모를까?  옆집 아이가 던진 돌에 우리 아이가 맞고, 돌아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가 남의 아이를 왕따 시키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우리사회가 성과위주와 물질만능의 세상이 되면서 가정과 학교는 제대로 된 전인교육을 포기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성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누군가를 누르고 이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역작용인 ‘분노’를 다스릴 어떠한 길도 없었다. 이러한 분노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여러 형태의 폭력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우리사회 각각의 영역에서 ‘관행’이라고 여겨지는 잘못된 문화와 함께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1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폭력범죄건수는 약 31만건이고 인구 10만명당 폭력발생건수를 따져보면 한국 609.2건, 미국 252.3건, 일본 50.4건으로 우리나라의 폭력범죄 발생이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은 물론 그 결과 폭력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고 한다. 역대 정부들이 폭력척결을 위해 여러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었고 박근혜정부도 4대악 척결을 중요한 민생안전 대책으로 꼽았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잔인해지는 각종 폭력범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폭력에 대해 지극히 관대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에 둔하고 무기력한 우리를 만들었고 그 처벌 또한 솜방망이라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 상습 범죄자가 양산되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가 ‘인간’인 것이다. 그 누구도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월한 권력과 힘이 있다고 해서 타인을 ‘비(非)인간’으로 취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그것을 교육하고 홍보해야 하며,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엄중한 처벌로 재발을 방지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안전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이라도 박근혜정부는 ‘폭력추방’을 국가개조의 핵심 과제중 하나로 삼아 우리사회의 각종 폭력을 추방하는 범국민적 의식개선과 제도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 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유치원에서 출발하여 대학에 이르는 학교교육 전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폭력금지’에 대한 단계별 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폭력예방에 대한 끊임없는 캠페인과 대책을 강구하며, 폭력발생시 엄중한 처벌과 교화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폭력은 어떤 관계 사이에서도, 어떤 사정, 어떤 종류라도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 없는 세상’이야말로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길이고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절실한 사회적 유산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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