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필자가 국내 모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2002년 봄, 당시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를 무색하게 하는 해프닝이 회사에서 벌어졌다. 사건의 개요는 입사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았던 신입사원이 며칠 동안 연락도 되지 않은 채 무단결근을 했었는데 신입사원의 어머니가 인사팀으로 연락하여 ‘아이’가 회사를 그만 둘 것이라고 통보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입사원이라도 대학수학기간과 군복무 기간을 합산하면 대략 20대 후반일 터 인데 퇴사 통보를 어머니를 통해 한다는 것이 사뭇 충격이기도 하고 어이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참 특이한 일이려니 생각했는데 10년 이상 지난 지금 언론을 통해 비슷한 소식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웃어넘길 일이 아닌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회사 지원 대상자의 부모들이 채용관련 문의를 인사 담당자에게 직접 하는가 하면 불합격했을 경우 불합격 사유까지도 문의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신입사원 연수 시에 식단까지 물어보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아이’들이 회사 내에서 제대로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회사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빈번하게 들려온다. 수강신청 시 여러 이유로 인해 일부 강좌의 경우 수강인원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자녀가 해당 강좌 수강신청을 못했다고 부모가 학교 측에 전화하여 항의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타 대학 교수로부터는 학기 종료 후 학점에 대해 학부형이 유선 상으로 담당 교수에게 학점 산출 근거를 조목조목 따지는 통에 한동안 업무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은 바 있다. 경우 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모든 것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집착, 이에 따른 아이들 스스로의 독립적 판단능력 부족에 따른 것이라 사료된다.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신조어가 바로 찰러리맨(chillaryman)이다. 찰러리맨은 어린이란 뜻의 차일드(child)와 직장인을 의미하는 샐러리맨(salaryman)의 합성어로서 개인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판단을 의존하는 성인을 뜻한다. 특히 찰러리맨은 취업 후에도 부모에게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심리적 의존성이 크다는 점에서 볼 때 찰러리맨 현상은 단지 어이없다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교과학습은 학부모들이 정해놓은 스케쥴대로 진행되고 학습량과 학습법은 학원 교사들에 의해 통제 받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에 있어서도 전형이 매우 다양하고 그마저도 매년 바뀌다보니 이를 학생 혼자서 판단하기 보다는 입시 전문가의 조언을 등에 업은 학부모가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시중 서점에 있는 학습 교재 코너에 가보면 아이들 스스로 교재를 정하기보다는 학부모들이 과목별 교재를 일일이 구입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이같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독립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각박한 삶에 지친 나머지, 더러는 자라나는 자식들을 보며 우리가 떠나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나갈까하는 걱정을 표시하기도 했다지만 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의 후속세대들을 보면 더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이 아이들 스스로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책임이기에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의 교육이 사회적으로 자립 능력을 가진 건전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입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찰러리맨 현상에 대한 핵심적인 원인이 아닐까? 그리고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그 목표가 아이들의 성공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어 아이들의 매사 하나하나에도 부모의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된 것이 오늘의 찰러리맨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전 앞선 세대 어른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늘 하던 말씀 중에 ‘나이 값을 하라’는 말씀이 새삼 생각난다. 나이 값을 못하면 부끄러워하고 개선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후속세대들도 나이 값을 할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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