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들, 공적 모르거나 절차 까다로워…보훈 당국 후손찾기 적극 나서야"

순국선열이 죽음으로 찾은 조국의 광복이 70주년을 한해 앞둔 지금도 독립유공자 4586인에 추서된 훈포장과 대통령 표창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국가보훈처에 보관돼 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훈포장을 받은 이는 대한민국장을 비롯해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을 합해 건국훈장 9922, 건국포장 1048, 대통령 표창 2539명 등 모두 13509.

그 훈포장의 3분의 1이 이미 고인이 된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을 찾지 못해 '미전수' 상태인 셈이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선 이견호 알마티 한국교육원장이 니콜라이 계 카자흐 독립유공자 후손협회장과 손잡고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운동을 벌인 끝에 지난해 1, 올해 2명의 후손이 각자 할아버지의 독립유공 훈포장을 품에 안게 됐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희(1876~1935) 선생과 의병장 민긍호(1865~1908) 선생 등 독립유공자 10여 명의 후손이 카자흐에 사는 것이 확인된 만큼 더 많은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카자흐에 살았거나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년 전 후손 찾기에 나선 두 사람은 우선 카자흐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11명의 독립유공자 '후보'를 발굴, 국가보훈처에 문의한 결과 그중 7인이 이미 국내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훈포장이 추서된 것을 알아냈다.

두 사람이 이들 7인의 행적을 추적해 최근 찾아낸 후손이 니나 최(65). 최씨는 1918년 옛소련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해 항일투쟁에 나섰던 오성묵(1886~1938) 선생의 외손녀로 밝혀졌다.

최씨는 올해 광복절에 지난 2009년 외할아버지에게 추서된 애국장을 전수받는다.

이견호 원장 등은 오성묵 선생 외에 1923년 베이징에서 항일결사회 총무로 활약한 채성룡(1892~1930) 선생,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들어진 한인사회당의 부회장을 역임한 미하일 김(1896~1938) 선생의 후손도 찾아내 각각 지난 3.1절과 순국선열의 날에 할아버지의 애족장을 전달받도록 했다.

이 원장은 "몇 년간 노력 끝에 유공자 3명의 후손을 찾아 훈장을 전수할 수 있어 뜻깊다"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유공자의 후손을 못 찾아서 후손 연금은 물론 훈장마저 유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후손은 못 찾는데 새롭게 인정된 유공자가 늘어나며 미전수 훈포장자 수가 20052446명보다 10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다.

국가보훈처는 홈페이지를 통해 수년간 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이어오고 있으나, 후손 스스로 유공자의 유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

이 원장은 "유족이 사실증명을 하려면 가족관계 증명서나 기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당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후손 대부분이 선대의 유공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손들이 유공자의 유품과 공적 기록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외 후손들은 한글을 몰라 유족 증명 신청서조차 작성하지 못한다"고 이 원장은 안타까워하면서 보훈 당국이 후손 찾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하일 김 선생의 후손은 선생의 공적기록을 보관하고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글을 몰라 신청을 못 했다. 그러다 2012년 이 원장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에야 관련서류를 제출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직접 국가보훈처에 제출해야 하는 유족 등록서류는 본인의 신상증명서, 출생증명서, 유공자와의 관계증명서, 가계도(가계도에 나오는 유공자와 유족들의 신상증명서 및 사망증명서 포함) 등 어림잡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이를 또 일일이 국문으로 번역해 제출해야 하는 탓에 국외 후손들은 국내 후손들보다 어려움이 많다.

이 원장은 "사실 관계 증명도 중요하지만, 국외 후손은 현지 특성을 고려해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독립유공자가 활동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명을 쓰거나 혹시 후대가 피해를 볼까 봐 본인의 행적을 알리지 않거나 지움으로써 유족들이 관련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유공자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카자흐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국어·국문학 연구의 선구자로 활동한 계봉우(1879~1959) 선생의 후손 니콜라이 계씨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던 사실을 1993년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알마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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