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오남매 중 맏이인 오빠가 회갑을 맞았다. 제천에 사는 언니가 그동안 오빠에게 해준 것도 없고 짜증만 부렸다며 오빠 회갑 때는 자기가 밥을 사겠다고 함께 모일 것을 제안했다. 8월 초순인 어느 주말, 오빠의 생일에 맞춰 날짜를 잡아 여기저기 모인 혈육들이 제천에 모였다.
 나와 여동생 내외 그리고 엄마는 청주에서 기차를 타고 갔고 강릉 사는 오빠도 기차편으로, 조카들은 삼삼오오 모여 승용차를 타고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이는 기회를 가졌다. 언니네 집에 모여 간단하게 차를 한잔씩 하고 우리 가족은 내가 운영하는 호텔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언니는 이미 채식주의자인 오빠를 위해 식당 측에 마땅한 식단을 주문해 놓았고 오빠의 작은 딸은 특별히 준비한 떡 케익을, 큰딸은 이날 모인 식구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다.
 이미 몇 차례 떡 케익을 선물 받아 먹어 본 적이 있지만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조카가 준비한 떡은 블루베리로 반죽을 하고 켜켜로 과일이나 견과류를 넣어 특이한 맛을 냈다. 반죽도 어떻게 했는지 푸슬푸슬하게 먹기도 좋고 먹은 뒤 속도 편했다. 떡 케익이 워낙 커 모두에게  골고루 싸 주고도 남았고 특별히 나는 더 많이 싸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선물 전달식에는 오빠 큰딸인 장조카가 참석자들 모두에게 손수 만든 가죽지갑을 선물했는데 가죽지갑에는 개개인의 이름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왜 얼마 전 조카가 전화해 영문 이름을 확인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연한 소가죽으로 만든 은은한 보라빛 지갑을 받고 나는 감동했다. 요즘처럼 빨리빨리 속도를 부르짖는 세상에 며칠 밤을 새워 식구들을 위해 지갑을 만든 조카의 마음씀이 그렇게 기특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특별히 엄마께는 핸드백을 선물해 드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아날로그 방식의 서정적이고 깊은 마음을 지닌 조카가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평소에도 명절이나 어버이날이면 마치 온 집안의 큰누이처럼 떡이며 식혜며 준비해 와 온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조카를 보며 참 요즘 보기 드문 인품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했다. 오빠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음을 담아 봉투를 전하자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라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오는 9월에 결혼 예정인 오빠 작은딸의 남자 친구는 보기 드문 훈남이라 푸근한 느낌을 주었고 언니의 딸 남자친구는 작곡을 하는 뮤지션으로 따뜻한 느낌을 줘 누가 봐도 편안한 스타일이었다.
 중학교 때 캐나다로 나가 공부하느라 친척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던 작은 애는 친척 형이나 누나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며 모처럼 혈육의 의미를 되새기는 듯 했다. 모두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사진을 찍고 잔을 부딪치고 모처럼 소리 내 웃으며 행복감에 잠겼다.
 근육량이 거의 없어 의사의 경고를 받은 뒤 특별히 먹는 일에 신경을 쓰고 운동을 하고 있는 오빠는 모처럼 얼굴에 살이 붙어 보기 좋았다. 워낙 정신적인 사람인지라 겉치레 삶보다 내면의 길을 다지는데 전력을 해 오던 터, 이제 회갑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건강도 돌봐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 셈이다.
 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날을 잡아 불자들과 모여 삼천 배를 하며 자기 수양을 했고 교사인 여동생은 명예퇴직을 앞두고 북을 배우고 탁구를 치느라 요즘 시간가는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여동생 남편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는 듯 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 회갑 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극진한 우리 오빠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진심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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