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속 신자들과 인사…순교자 후손들도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사흘째인 16일 오전 한국 최대 순교 성지를 찾아 순교자를 위해 기도하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날 오전 8시50분께 교황이 서울 서소문 성지에 도착하자 성지 주변을 가득 채운 500여명의 신자는 뜨거운 환호로 교황을 맞았다.

    서소문성지는 한국의 103위 성인 중 44위와 이날 시복된 124위 중 27위가 순교한 한국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다. 200여 년 전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신앙인들이 '인륜을 저버린 패륜의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곳이다.

    교황에 앞서 8시34분께는 염수정 추기경, 강우일 주교, 조규만 주교 등이 서소문 성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교황이 성지에 들어서자 먼저 두 화동이 꽃바구니를 순교탑 앞 제대에 놓았다. 이후 교황은 순교탑의 제대 앞에서 두 손을 깍지낀 채 가슴 아래에 모았다.

    교황은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여 1분 여 기도했다. 성지를 둘러싼 수많은 신자도 이와 힘께 고개를 숙였고 교황을 맞이한 환희로 가득했던 성지가 순식간에 엄숙한 고요로 가득찼다. 
    순교탑에는 '복되어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성경 구절과 순교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기도가 끝낸 교황은 성호를 긋고 강복 기도문을 낭독했다. 기도문은 교황이 라틴어로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받으소서'로 시작해 신자들이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로 답하는 내용이었다.

    기도가 끝난 이후 교황은 자신을 둘러싼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특히 좌석 앞줄에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다수 앉아 의미를 더했다. 태어난 지 100일을 맞이한 영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가 참석했다.

    이른 시간의 일정에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교황은 신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교황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아이들도 활짝 미소지었다. 
    신자들은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부는 흐느끼며 큰 함성과 함께 "교황님!", "파파!"를 연호했다. 신자들은 휴대전화를 높이 치켜들고 교황의 모습을 한 장면이라도 담으려 애쓰거나 잠깐이라도 교황의 손을 잡으려 자신의 손을 길게 뻗었다. 교황과 함께하는 '셀카' 촬영에 성공한 '행운'의 신자도 있었다.

    '파파'라고 적힌 대형 컬러 패널을 높이 치켜든 신자도 있었고, 한 여성 신자는 감격을 참지 못하고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더운 날씨에 교황이 힘겨울까 길게 팔을 뻗어 한참 부채를 부쳐주는 신자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편 이날 참배는 당초 일정에는 없었으나 염수정 추기경이 성지가 지닌 의미를 고려, 강력히 추진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10분이 넘게 미소를 머금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교황은 이윽고 검은색 쏘울 차량에 몸을 실었다. 교황을 마주한 여운을 기억하려는 듯, 차량이 천천히 멀리 사라질 때까지 성지에 울리던 신자들의 환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소문공원을 관리하는 중림동 약현성당 이준성 주임신부는 "교황님 방문으로 잊혀졌던 성지인 서소문 성지가 재조명 받고 순교하신 분들의 순교정신이 드러나는 계기가 돼 기쁘다"라며 "순교정신은 양심의 자유, 모든 사람을 품는 나눔의 사랑, 신분제를 뛰어넘는 평등"이라고 설명했다.

    화동 역할을 맡은 성석희(13) 군은 "꽃바구니 밑에 신자들이 쓴 정말 많은 편지가 담겨 있다"면서 "교황님은 만나기도 어려운 분인데 가까이서 뵙게 돼 참 좋다. 가난한 사람들 많이 도와주셔서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천주교 선구자인 이승훈의 후손인 이태석 신부는 "천주교 초기 순교하신 분들의 수고가 결실을 거둬 교황께서 이곳을 찾았다고 본다. 순교자는 천주교가 이 땅에서 성장하게 한 밀알이자 씨앗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아르헨티나인으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약현성당 신자 야네 안나 마리아(61) 씨는 "교황님이 늘 자신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을 품어 좋다. 한국에서 교황님을 뵐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사를 나눌 때 '저희 가족을 위해 축복해 달라'고 스페인어로 요청했고 교황님이 '가족을 축복하겠다'고 답했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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