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공증인 / 변호사)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남편의 건물소유와 이에 대한 신고, 세금 문제로 시끄럽던 권은희씨가 결국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권씨 본인이 우리 지역에서 잠깐 동안이지만 변호사 업무를 한 적이 있고, 그녀의 남편이 우리 지역 출신이고, 문제되던 건물의 소재지도 우리 지역이었기에, 그녀(정확히는 그녀 남편)의 재산문제는 우리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보수언론이나 종편들은 권씨가 마치 재산을 허위신고 하고 불법 이득을 챙긴 양 떠들어댔지만, 모두 정치적 편향에 기반을 둔 허위/과장 보도일 뿐이다. 그렇지만 권씨의 재산문제를 접하는 대중의 감정을 양면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정의와 양심의 화신으로 비쳤던 그녀가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를 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도덕적 반감이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재산축적은 우리 모두의 욕망이기에 그녀만을 비난할 수 없다는 동정심이다.

 고대에서부터 ‘소유’는 인류의 최대의 분쟁거리였다. 소유를 위하여 동료인간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기도 하고, 패를 나누어 내전을 벌이고 이웃과 전쟁을 하기도 하였다. “조국의 원수나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용서하고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재산과 여자를 빼앗아간 원수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말까지 있지 아니한가. 이렇듯 소유가 인간의 분쟁의 근원이지만, 근대 이전에 소유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사상가가 없었다는 점은 기이하다. 소유는 신이나 자연의 질서라고 치부하거나, 소유가 자아실현이나 공동체 구축의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소유 자체를 정당화하는 철학은 없었다.

 소유 자체에 대하여 철학적 정당화를 시도한 최초의 사상가는 아마도 17세기 말의 로크(John Locke)일 것이다. 그는 노동이 소유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자연은 본래 인류 공동의 소유로 주어진 것인데, 누군가 대지에 울타리를 치고 이를 경작할 때 나무의 열매를 채집할 때 숲속의 동물을 힘들여 잡았을 때, 그 대지와 동식물은 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힘들여 만든 빵은 내 것이다,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구입한 콜라는 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에게서 빵과 콜라를 빼앗을 수는 없다’라는 논리는 너무나 단순 명백하여 오히려 우리에게 식상해 보일 정도이지만, 이는 소유에 대한 관념사에서 혁명적 전환점이다.

 혁명적 사고의 전환? 그 이전의 누구도 소유를 노동에 근거지울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전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철학자들? 그들에게 노동은, 로크와 정반대로 소유와 오히려 배타적이었다. 노동은 노예/가사/생계/가난 영역의 단어로서 동물적 인간계의 언어였고, 반면 소유/재산/노동하지 아니함은 자율적 인간과 공동체 시민이 상징이었다. ‘어느 정도’(그렇다고 그들이 인간의 끈임 없는 소유욕과 재산이 더 많은 재산을 벌어다 주는 축적논리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다) 재산을 보유하여 생계문제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립할 수 있고, 또한 땀 흘려 노동할 필요가 없어 여유시간이 많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만이 이성과 책임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고,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권씨와 그 남편에 대하여 부동산 투기라거나 과도한 탐욕이라고 비난하기에는 너무 남세스럽다. 우리 자신들도 우리 사회 공동의 문제는 외면한 채 자신의 생계와 성공만을 고민하고, 노동 없는 편안한 노후를 위하여 수시로 부동산 투기시장을 기웃거리고, 보유한 아파트나 토지의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대하고,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호위 호식하는 부유층을 부러워하고, 노동 없는 삶을 살기 바라며 끈임 없이 자녀들의 공부와 성적을 채근하지 않던가. 현대 사회의 근간인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이를 정초한 로크처럼 ‘노동에 의한 소유’의 논리로 시작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는 ‘노동 없는 소유’가 보편화 되고, 심지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열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유가 노동에 의하여 정당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反노동-소유가 모두의 열망이 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이렇게 반문해 보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에 의하여 소유가 정당화되지 못한다면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말처럼 ‘재산은 도둑질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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