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출국했다. 5일 중 3일을 충청도에 할애한 그의 방문은 천주교 신자 뿐 아니라 전 충청도민에게 큰 은총이었다. 교황이 가는 곳마다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신자들은 깃발을 흔들며 비바 파파(Viva Papa)’를 연호했다.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도, 여든의 할머니도, 모두의 얼굴이 교황을 마주한 기쁨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소형차를 타고, 검은 가죽 가방을 직접 든 교황의 모습은 100여 시간 동안 전 세계로 송출됐다. 그는 시종일관 소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 중 가장 진한 감동을 이끌어 낸 곳은 바로 음성 꽃동네에서였다. 이곳에서도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다운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 애초 그의 스케줄은 1분 단위로 빠듯하게 짜여 있었다. 장애인들과의 만남이 있었던 희망의집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30분이었다. 그러나 교황은 예정된 30분을 30분이나 훌쩍 넘기며 행사장에 모인 장애인들을 일일이 축복하고, 안아주고, 입 맞췄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이곳을 찾은 목적이 장애인들을 만나기 위함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교황은 바쁜 일정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다. 유가족에게 단독으로 세례를 줬고, 별도로 면담했고, 진도 팽목항에 남아있는 유가족들에게 편지와 묵주를 전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그 잔인하고 포악한 시간들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어 가는 동안, 그는 거듭 그 아픔을 되새기게 했고, 말과 행동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45일간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낳았던 교황은 떠났다. 교황의 방한이 반짝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강론과 연설 등을 통해 남긴 많은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평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젊은이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상처 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던 그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삶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황 방한의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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