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례 괴산 청천초 교장

▲ 김종례 괴산 청천초 교장

               
 희망의 빛깔을 축복처럼 뒤집어 쓴 여름이 삼복을 지나 쏜살같이 달려간다. 벼포기는 어깨를 가지런히 하며 상생의 의미를 더해주고, 동고동락 companion비타민을 퐁퐁퐁 날려주는 요즘이다. 활짝 비개인 아침에 연둣빛 아이들이 느티나무 아래로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지난 3월 교문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정문 옆에서 초입 환영해 주던 수령 26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언뜻선뜻 스쳐가는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지를 품고 있는 자태를 올려다보며 나는 잠시 꿈을 꾸었다. 하늘과 나무와 사람이 하나인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주어진 이 짧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는 내게 느티나무는 넌지시 일러주었다. 내 품에서 창조적인 존재의 아이들을 키우라고, 이 세상에서 저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꼭 찾게 하라고, 무심히 흘러가는 저 구름처럼 순간의 감정이 아닌 인생의 참 가치와 삶의 목적을 깨우쳐주라고, 서로가 충만한 사랑을 원하고 있는 가슴마다 대가없이 지불할 사랑도 정말 충만한지를 점검하라고, 세상을 향한 진정한 대의를 품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늘 속삭여 주라고.... 느티나무는 내게 날마다 가르친다.
 내 팔로 다섯 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 주변에 열 개의 의자를 삥 둘러 고정하고, 파란 잔디도 심어주고 음악도 틀어준다. <생각의 나이테 살찌우기> 라고 테마 글씨도 써 붙였다. 쉬는 시간과 방과 후면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 모여들어 놀기도 하고, 무릎에 책을 놓고 독서하며 명상도 하고, 저마다의 꿈과 생각을 키워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방학이 되자 운동장 삼분의 일을 그늘로 채워주는 느티나무 아래서, 나도 진록의 청정한 기운과 활력의 비타민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느티나무에 이렇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유년시절 집 앞에 태산처럼 서서 나를 지켜보던 느티나무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두메산골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꿈을 꾸며 자랐다. 느티나무는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은 자연인 상태인 내게 침묵의 스승이며 보호자였다. 느티나무 아래서 잠결에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자장가 소리, 그 사랑의 음성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만나면, 그런 사랑과 교훈을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 가득하였다. 한 잎 새순 같은 아이들이 틀에 박힌 네모상자 앞에서 빠져나와 자연의 진솔한 팔에 안겨 신나게  뛰어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넘어져 생채기가 생겨 아파와도 꿋꿋한 인내심과 강인함을 길러서, 어떠한 역경과 장애물에도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용감한 도전자가 되기를 바란다.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스스로 깨달아 감성지수 만점인 아름다운 인성으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너희들이 이 지구에 온 목적은 누군가를 향하여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함이라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서 이 세상의 평화와 질서를 위하여 각자의 삶을 창조적이고 신비롭게 엮어가라고, 마음의 두레박을 무한정 내려놓고 세상을 내어다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라고... 오늘도 나무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황혼의 나이에도 느티나무 아래에 앉으면 외로움, 우울함, 두려움, 슬픔의 세계가 구름 걷히듯이 물러간다. 꽃 피고 잎 지고 시가 되는 낙엽의 모습이 풍덩 빠질 만큼 기쁘고 슬픈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자기의 감정을 덧칠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의 나이테를 살찌우는 저 느티나무처럼, 성공적 삶이란 자신의 비전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며 조화롭게 성장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느티나무는 수많은 팔을 흔들어주며, 상상의 날갯짓으로 천상을 마음껏 날아보라고.... 신선한 교육의 강물에서 신나게 헤엄쳐 따뜻한 품성으로 자라나라고.... 날마다 우주안의 비밀을 아이들에게 속삭인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한그루 커다란 나무 아래서, 창조주의 지극한 사랑이 어떠한지와 소멸되지 않는 영혼의 음악을 들려주는 하모니의 극치를 감지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인생에 그 얼마나 유익하랴!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