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충북대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즉위 후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셨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4박 5일 100시간의 빡빡한 일정 내내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밝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신 건강한 모습은 한국인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방한 전에도 그분의 행적은 예전의 그리스도교 수장과 또 다른 겸손과 낮은 자세로 화제가 되었지만 이번 방한은 우리에게 그 분을 좀 더 가깝게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어린이를 사랑하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한 진실하고 겸손한 교황의 행보에 곳곳에서 상처받고 괴로워하던 이들이 평화와 안식을 얻은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그 후에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군대 내에서의 가혹행위로 자의와 타의로 꿈도 펴지 못한 젊은 청년의 삶을 앗아갔다.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끔직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은 우리가 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물질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양심에 비추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것 같다. 속고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어떤 진실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구제하기 어려운 사회기 되어버렸다.  돈과 권력과 힘이 없어서 억울함이 가득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수렁으로 빠져드는 절망에 몰려있던 우리에게 교황의 방한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리라. 그 분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차갑게 굳어 메말랐던 우리의 마음에 내려주신 감동이라는 선물이었다.

   입보다 귀가 크시다는 교황은 말씀 대신 상처투성이인 약자의 심정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표정과 어루만짐, 권위적 교황의 자리를 권좌로 생각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 공감하는 역할에 충실한  그의 모습에서 많은 반성과 배움을 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직장과 가정에서도 더욱 몸을 낮추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조금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응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높은 자리에 않기를 좋아하지 않고, 행사장을 이동하는 차량의 종류와 크기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평범한 보통 사람과의 거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좁히려고 애쓰는 교황의 모습도 많은 교훈을 남긴다. 우리 사회의 고위공직자와 정치가들은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석자의 직함에 맞는 의전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대신 행사 내용과 진행 자체에 충실할 수 있는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그 행사의 취지를 이해하고 참석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라면 어느 자리에 안내를 받던지? 소개 순서가 언제인지를 문제 삼지 않는 세련된 리더로 존경받아야 하지 않을까?

  수행하는 경호원들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자신의 안전보다 보듬어 줄 사람이 보이면 언제 어디서는 행동으로 옮기는 교황의 모습에서 마음을 비우는 교훈도 얻었다. 경건하고 엄숙한 권위의 근본에 유머러스한 사랑의 제스처를 더하는 꾸밈없는 모습에서 나처럼 신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까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그간 국내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충청지역이 순교와 성지로, 어려운 이웃의 보금자리로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도 교황 방문의 수혜라 할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 밀양 송전탑과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직 근로자 등 갈등과 사건 사고로 괴로움과  슬픔에 잠겨있는 여러 분들이 교황의 위로를 시작으로 속히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다. 정부와 관련자들이 문제해결에 더욱 적극성을 보이고 우리 사회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세월호 사고 이후 불경기로 곤란을 겪어 가던 전세버스업체가 교황 방한의 특수로 오랜만에 대목을 보았다고 한다. 방한 기간 동안 부산 ASPEC 정상회의에 버금가는 5000억 경제효과가 있었다고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동적 언행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렸을 뿐 아니라 침체로 고통 받던 내수 경기 활성화에도 불을 지피셨다는 것이다. 최근 1400만명의 관객을 감동시켜 화제가 된 영화 명량의 인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에서 시복미사가 열린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 같다. 성모승천대축제일과 광복절이 같은 날이고, 그 기간에 교황의 방문이 이루어졌다. 행사 후 신자들이 준비해온 봉투에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주워 담아 그 많은 인파가 몰린 행사장 주변의 깨끗함에 놀랐다는 외국인 유학생의 말에서 대한민국의 또 다른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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