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사회학박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이후 25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교황 취임 후 아시아 국가로는 첫 번째로 방문이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전쟁이라는 국민적 스트레스를 60년 넘게 안고 살아왔고,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로 이념적, 지역적 갈등을 겪고 있으며,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성 상실이 빚어낸 각종 폭력사건과 대형사고로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던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고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했었다.
따라서 종교와 종파를 떠나 많은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 용서, 화해의 메시지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커다란 위안이고 축복이었다. 더구나 이번 방한의 공식방문지가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인 솔뫼성지,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대전 월드컵경기장, 음성 꽃동네, 해미순교성지 등 충청권에 집중되어 그동안 별로 큰 소리 치지 못하고 살던 우리 충청인들에게는 공연한(?) 자부심과 함께 특별한 기쁨이 되었다.
4박5일 동안 교황은 권위를 내려놓은 소박함과 겸손함,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돌봄의 마음을 보여줬고, 세계평화나 국제적 이슈가 아닌 오롯이 한국사회의 문제들과 한국국민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했으며,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특별히 천주교를 내세우거나 선교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특히나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 위안부 할머니,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쌍용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가족, 새터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진심으로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도 종교는 물론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지도자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깊은 반성과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교황의 말씀처럼 ‘삶이란 혼자 갈 수 없는 것’이기에 의심, 대립, 경쟁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마음을 바꿔(回心) 용서하고, 용서를 통한 화해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기를, 이 땅의 평화와 화해를 진정으로 소원하고 기도해준 교황의 모습은 우리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교황의 방문과 때를 같이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측에 산림 공동관리, 환경협력, 문화재 공동발굴, 가족상봉 등 작고 실천 가능한 사업을 통해 교류를 시작하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했고, 더불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실천방안으로 한국,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고 미국, 러시아, 북한, 몽고가 참여하는 ‘원자력안전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탑승한 전세기가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인 14일 오전에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3발을 발사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수시로 위협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황이 인정한 ‘침략과 전쟁, 분단의 끔직한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이들’이 아닌가.
교황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메시지를 주고 떠났다. 우리는 그 커다란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한편,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부정, 부패, 부조리, 불합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국가개조 수준의 대대적인 쇄신’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가 되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들뜸을 뒤로 하고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듯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제 은혜로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다. 4개월이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 인사문제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정부가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산적한 나라 일을 원만하고 신속하게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거나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면서 소통하고 화합해야만 국민이 마음을 돌리고 마음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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