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부국장

기억하는가.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던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북한 경비정의 기습에 맞서다 장렬하게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있었음을.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우리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북한의 피격으로
침몰되면서 장병 46명이 희생된 사건도 있었음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고귀한 목숨을 잃었는지.
수많은 재난 재해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안타깝게 희생됐는지.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했는지도 알고 있는가.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기념식은 9년 동안이나 군 자체 행사로 치러졌을 뿐, 정부나 국민의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 속에 내던져 있었다.
천안함 사건은 국민적 애도는커녕 자작극이니,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느니 하는 온갖 괴담이 무성하면서 숭고한 전사자들의 명예마저 훼손시키는 작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교폭력이나 재난·재해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이들의 죽음을 한낱 개인의 죽음으로 치부하고 말 일인지 묻고 싶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목숨마저 흔쾌히 내놓은 영웅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무관심과 병폐로 인해 어쩌면 ‘사회적 타살’을 당한 희생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요즘 소위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통해 하는 측은지심이며, 그들의 희생을 야기한 사회적 병폐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으로 전사한 장병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용맹함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추모와는 엄연히 다르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노란리본을 달고 애도한 수많은 국민 중에서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전사자들은 물론, 학교폭력과 수많은 재난·재해로 숨져간 사람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한 눈물을 흘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무릎꿇은 정치 지도자들이 그들의 유족 앞에서 무릎을 꿇은 모습은 왜 보지 못했을까.
욕을 먹을지는 몰라도, 세월호 유가족 중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며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의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다른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실천해 본 적이 있는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이를 계기로 한 국가적 재난·안전체계의 강화, 합리적 수준의 보상과 배상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으나 보편적 국민 감정과 사회적 합의를 넘어선 요구는 오히려 정서적 반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야당이 제출한 특별법안 내용은 의사자 지정을 비롯해 국가기념일 지정, 추모관 설립, 대학특례입학 등 대부분 국민적 공감대와는 동떨어진 내용들이다.
유족과 사회단체 등이 진상규명만을 요구한다며 내놓은 특별법안 내용에도 보?배상금 지급, 생활지원 및 의료지원, 교육지원, 장례비·의료비·생활지원금 혜택, 면세 등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부분들이 포함돼 있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고 비통하더라도 나라를 위하거나 국민을 위한 희생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따라서 세월호특별법은 보상과 배상, 사회적 특혜를 배제한 채 진상 규명과 재난·재해의 사회적 체계 강화, 사회적 병폐에 대한 책임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국민 정서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을) 빨리 끝냈으면 한다. 우리 욕심 채우려고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지 않느냐. 국민이 지지해줄 때에 그만둬야 한다”는 세월호 일반인 유족들의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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