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지난 일요일엔 작은 아들 여자 친구를 보러 서울에 갔다.
 아들은 3년 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뒤 몇 차례 소개팅도 하고 기회가 닿아 사람을 만나 본 모양이었다. 혼기에 이른 아들을 둔 엄마 마음이 누구나 그러하듯 나 또한 그동안 주위를 살피며 아들에게 마땅한 규수를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아는 분을 통해 참한 규수를 아들에게 소개했는데 영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내 눈에는 외모도 그리 참해 보일 수가 없고 직업 또한 마땅해 결혼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잘 돼 가는지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해 물어볼 때면 아들은 상대가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는 둥, 상대가 날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라는 둥, 가슴이 안 뛴다는 둥 핑계를 대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도대체 네가 찾는 사람이 누구냐, 네가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그렇다며 다그쳤지만 다 큰 아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몇 차례 주변 사람을 통해 마땅한 규수를 만나보게 했으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때가 되면 좋은 인연이 나타나겠지 하며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지난 봄 아는 교수님의 소개로 한 규수를 만나게 되었다.
 규수와 만난 뒤 전화를 해 보니 아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 뒤 아들 녀석은 적당한 간격으로 규수를 만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 내려온 아들의 얼굴이 화사하게 핀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들 얼굴이 환히 밝아진 걸 보고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기도 했다. 아들에게 여자애 사진을 보여 달라 여자애는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침착한 성격의 아들도 상기된 표정으로 여자 친구 자랑을 했다.
 아들 말에 의하면 여자 친구는 착하고 소박하기 그지 없다고 했다. 늘 시내버스로 어딜 돌아다녀도 불평 한마디 없고 아들이 밥 한 번 사면 자기도 꼭 한차례 밥값을 낸다고 했다. 사귄지 백일 기념 선물로 그녀가 아들에게 향수를 선물해 아들이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겠다며 골라보라고 했더니 만원 짜리 팔찌를 두 개 골라 함께 차고 다니자고 했단다.
 패션 디자인 쪽에서 일하면서도 입는 옷도 검소하고 늘 운동화를 즐겨 신고 다닌다고 했다. 전혀 허영기를 모르고 소박한 아들에게 딱 맞는 규수가 아닌가 싶었다. 우연히 아들이 규수의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인품도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살다 한국에 들어온 아들이 이런 저런 규수들을 만나며 제일 불만이 순수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여자애들에 비해 한국에서 만난 아가씨들은 상대의 조건을 우선시하고 타산적인 면이 두드러진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제 마음에 드는 규수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들을 보며 나 또한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고 언제 기회를 보아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아들에게 전화해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일요일 점심을 택해 남편과 나는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토요일 저녁 술을 즐겨 마시는 남편에게 내일 만남을 위해 술을 자제하고 좋은 인상으로 작은 애 여자 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서울에 도착해 우리는 스스럼 없이 만났고 마치 오래 알아온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터미널 인근 백화점 식당에서 한식을 택해 먹었는데 해말갛게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맑고 순수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남편 생일 선물이라며 와인을 준비했고 비싼 게 아니라 죄송하다며 수줍어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터미널 지하상가로 아이쇼핑을 나갔고 그곳에서 터키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그녀에게 작은 스탠드를 사줬다. 아들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고 있는 그녀에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남녀가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레임 가득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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