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시인)

 

“요즘 세상에 누가 회갑잔치를 하냐. 칠순도 너무 젊다고 하는 판에. 식구들끼리 밥이나 한 끼 먹으면 되지.” 그래선지 끼리끼리 놀이 겸 떠나서 자축하는 모임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도 그런 공론이 일었고 한여름 나들이를 하게 됐다.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은 그 자체가 고향이고 살가운 존재다.
벌써 세상 뜬 친구들도 여럿 되고 그나마 객지에 흩어져 살다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지 밀린 세월을 풀어내느라 수다 밑천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한 바탕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잔을 돌리고, 무리무리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손녀자랑으로 시끌벅적해진다.  어디 가 봤네. 뭘 먹었네, 어디가 아프네 하며 시시콜콜한 일상사부터, 초등학교시절 변소 청소 한 얘기까지 중구난방이요, 뒤죽박죽 졸가리도 없이 몇 바퀴를 돌아도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제 흥에 겨워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리자 그대로 애국가 제창이 된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에서 시동이 걸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대목에 이르러서는 패싸움하듯 한통속이 되어 고래고래 기세가 등등해 진다.

‘나이 듦’과 ‘늙어 가는 것’은 다르다. 아니 뉘앙스는 달라도 본질은 전혀 같다.
시간이 ‘세월’이 되고, 세월은 ‘나이 듦’으로, 늙음은 다시 ‘죽음’으로 옮겨가는 것이 순리며 진리다. 맞아 맞아 맞장구는 아니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도리질 칠 일은 아닌 것이다.
‘나이 듦’이 되었든, ‘늙어감’이 되었든 ‘어떻게 나이 들고 늙어 갈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삶의 태도일 것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매슬로의 ‘욕구위계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부터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과 애정에 대한 욕구’, ‘(사회적)자존감의 욕구’, 인지적, 심미적 욕구인 ‘자아실현욕구’의 다섯 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말대로라면 ‘내 나이가 어때서’는 사회적 ‘자존감의 욕구’와 ‘자아실현욕구’의 중간쯤에 해당 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노래할 때는 ‘내 나이가 어때서’가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 나이에 뭘’하고 한 발 물러서서 ‘노(老)’티를 내는데 있다.

    한 친구가 최근에 동네 주민 센터 에서 운영하는‘영어강좌’프로그램에 푹 빠져 지낸다고 했다. 초급반에서‘중급반’으로 올라섰다고 귓속말로 자랑을 곁들인다. 물건이름을 영어로 외기도 하고 궁금한 건 미국 사는 사위한테 꼬치꼬치 묻기도 한단다. “그걸 배워 어따 써 먹느냐”며 유난 떤다고 남편이 핀잔을 줘도 알아가는 재미가 장난 아니라고.
‘나이 듦’에 대한 준비는 이제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과제가 됐다.
노년의 삶을 그저 ‘견디는 삶’으로 생을 마칠 것인가, 아니면‘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가면서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가 진정한 노후대책의 잣대가 돼야한다.
사회복지를 기본으로 하는‘문화 복지’가 최고의 정책 목표가 돼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내 나이가 어때서‘는 그런 점에서 위정자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고령화 사회를 맞게 되는 우리가 미리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비 하라는‘알람’쯤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글을 쓰고, 외국어를 배우고, 젊은 시절 읽었던 철학서적을 다시 빼어들고, 인터넷을 뒤지고, 역사를 공부하는 노후의 삶은 분명 ‘견디는 삶’이 아니라‘가꾸는 삶’이 될 것이다.
봉사활동만 열심히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평균수명이 4년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멋진 취미생활과 남을 위한 봉사활동까지 한다면 선악을 떠나서 풍요로운 노후, 행복한 노년이 될 것이다.
‘그 나이에 배워서 어따 써 먹을라고’는 짓궂은 우스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뭐든 하자. 하되 즐겁게 하자. ‘내 나이가 어때서’는 자신에게 거는 행복한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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