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침례신학대 교수)

 

이어령은 젊은 시절 ‘우상의 파괴’와 ‘저항의 문학’같은 평론을 썼다. 거침이 없는 쾌도난마의 논리들이었다. 이어령은 평론 뿐 아니라 소설을 쓰고 시를 분석하고 기호학을 강의하고 신문사의 논설고문과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아픈 딸의 영향으로 신앙을 갖게 되면서는 지성을 넘는 영성어린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느 일을 하거나, 어느 자리에 있거나 탁월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을 깨쳤다는 전설같은 것들을 들여대면 정작 자신은 서른을 넘고부터 천재가 아님을 알았고, 나이들면서 오래 산 사람가운데 천재를 찾아보니 괴테가 있더라고, 박식했지만 노력형인 대기만성형의 괴테로 방향수정을 했노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최인호는 세간의 표현대로 ‘장 안의 지가’를 올린 작가이다.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잃어버린 왕국’ ‘상도’ 같은 대중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써냈다. 아마도 최인호는 젊어서부터 이어령 선생의 글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오직 작가로 살다 죽기를 바란 글쟁이였던 그는 생애가 몇 달 안 남은 병중에 젊을 때부터 읽던 이어령의 글 서른 두 편을 간추려 가제본을 해들고 이어령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서너 달 뒤에 소천하자 최인호의 신춘문예 당선작 ‘견습환자’를 고른 심사위원이고, 글벗이라고 부르면서 최인호를 아꼈던 이어령은 최인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읽고 싶은 이어령’이라는 책이 나왔다. 평소 한 번 발표한 글을 다시 엮어내지 않는 이어령에게는 “추억의 글, 위안의 글, 같이 포옹하고 싶은 생명체로서의 글”일 수 밖에 없고, 최인호에게는 자신의 문학에 당선이라는 보증을 서준 스승이고, 문학의 큰 형님이며, 존경하는 선배 작가에 대한 헌사이고 탐구이고 존경일 것이다. 둘의 우정을 알게 된 독자에게는 젊은 문장, 젊은 시선, 젊은 시간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령의 글을 최인호의 취향을 투영하면서 읽는 독법이 유용하겠다. 미려한 이어령의 글들을 읽으면서 탁월한 글쟁이가 어떤 부분에 공감해서 이 글들을 골랐을지 짚어보면서 이야기 잔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책 내용은 젊은 이어령이 본 현대사회의 특질에서 우주의 진리까지 다양하다. 삶의 부조리를 슬쩍 비틀기도 하고, 각 나라 음식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어령의 촉수가 무제한임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고, 그 가운데 무한한 지적 탐구도 볼 수 있다. 젊은이답게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노력도 담겨있지만 세월의 흔적을 느끼지 못하도록 지금의 세사에도 유용한 논리들이 담겨있다. 평범한 사실도 그에게만 가면 새로이 재배열되는 탁월한 선생이 젊은 시절에 쓴 글들은 날렵하고 예리하기 때문이다. 청년 이어령의 글을 청년 때부터 읽은  최인호가 추천하고 청년시절을 그들과 함께 보냈거나 보내려고 이 책을 집어들고보면 세월은 속절없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지.
이어령은 에세이집 머리글에서 “인호가 없었다면, 그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아마도 이 세상에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갔듯이 꼭 나도 ‘읽고 싶은 최인호’의 글 모음집을 내고 싶다”고도 적었다. 이어령의 목소리이면서 최인호의 취향이 들어있는 이 책을 읽는 일, 최인호의 시선을 통과한 이어령의 글을 읽는 일은 두 사람의 글을 통한 우정에 슬며시 동승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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