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우리처럼 명절에 고향을 찾아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많지 않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화지를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개별적으로 혹은 무리지어 자신이 태어났거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그것이 전통적 관습이든 추억을 찾아가는 여행이든 우리 삶의 인생여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몇 시간을 몇 날을 기다리고, 지루한 교통체증과 그로 인한 수고로움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돌아올 곳, 오매불망 끝없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시원의 극지는 우리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든, 망명을 떠나든, 우리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원한 노스탈자 다.
 마치 자석이 물체를 끌어당기듯 흡사 중력처럼 끌리는 곳으로 우리 삶의 방향이 돌아간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사는 것 이것을 ‘생텍쥐페리’는 ‘생명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는 모든 적의를 녹이고 그 안에서 생명의 온기를 되살리는 곳, 그것이 사랑이고 고향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명체는 낯선 것을 경계하고 싫어한다. 반면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며 힘을 얻는다. 정치인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거나 힘들 때 고향을 찾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몸이 아파도 가고, 힘이 떨어져도 간다. 왜 가는지 이유가 없다. 누가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건만 그저 갈뿐이다. 그리고 꿈속에 조차도 고향을 잊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는 그렇게 고향에서 힘을 얻고 평안을 얻는다.
 주위를 둘러보라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고향이 없는 것이 있는가. 우리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잠시도 고향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고향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오로지 같은 동향이라는 이유로 오래전부터 함께한 듯이 마음을 열고 향수를 공유하며 금방 친밀감을 느낀다. 특히 외국이라도 나가보라 낯선 타지에서 같은 국민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가. 또 고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에 모두들 애국자가 된다. 이 또한 고향에 대한 마음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나침판이 항상 일정한 극지를 가리키고 있듯이 고향은 영원한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다. 우리 인간은 시나 음악등 문학과 예술을 통하여 줄곧 고향을 노래했다. 그곳에는 항상 흙냄새가 바람에 묻어난다. 들판에 가득 곡식이 익어가고 언덕너머 시냇물이 졸졸졸 흐른다. 울창한 나무숲에 무수한 꽃들이 만발하고 새가 우는 거기가 고향 이다. 고향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어떤 모양일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약하는 따사로운 빛의 봄일까? 아니면 천둥번개 비바람이 흩어지는 무더운 여름일까? 그것도 아니면 낙엽 지는 계절 수북한 그리움에 노을 지는 가을일까? 어쨌든 고향은 언제나 외롭지 않다.
 타력이란 꼭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생명의 공간 속에서 서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인력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한 타력이 바로 고향의 힘이자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러한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누구나 힘과 용기를 일으키게 하는 진원지가 존재한다. 그대상이 고향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이가 들고 몸이 시들면 그런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 몸이 원하기 때문이다.   
 이 가을 나도 잊었던 고향을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역동하는 힘을 많이 충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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