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무슨 영화였는지 제목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젊었던 시절 배우 김진규가 어느 다방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허공에 대고 동그랗게 도넛 모양의 담배연기를 마술을 부리 듯 퐁퐁퐁 연달아 피워 올린다. 공중에서 동동 떠다니다 흩어지는 그 모습이 정말 멋이 있어서 영화 내용은 다 잊었는데 그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청소년들은 대개 영화 속의 흡연 장면을 보고 담배를 피워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담배를 배운다고 한다. 2004년부터 지상파 TV에서는 담배가 사라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아직 흡연 장면이 무방비 상태다. 모 신문사가 최근 관객이 많이 찾은 한국 영화의 흡연 장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도둑들’ 에는 28회에 걸쳐 12분43초, ‘범죄와의 전쟁’에는 56회에 걸쳐 48분15초 동안 흡연 장면이 노출됐단다. ‘범죄와의 전쟁’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지만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의 담배를 잡은 억센 손, 담배를 피우고 있는 폼이나 눈빛이 너무 멋있어 보여 담배를 끊지 못한다는 고백이다. 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의 흡연 장면은 규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에는 영화관에서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화장실 쪽에서 여기저기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나는 화장실 휴지통에 불이라도 난줄 알고 뛰어갔다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이 난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여자 화장실인데 말이다. 여성흡연자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 청소년(중고등학생) 흡연율은 지난해 9.7%이다. 남학생의 흡연율은 14.4% 이며 특히 고3의 흡연율은 25%인데 이는 OECD 남성 평균 흡연율(20.3%)보다 높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 1월부터 담배 값을 기존 2500원에서 2천원 오른 4500원으로 인상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담배 한 개비에 2백 원이 넘는 셈이다. 하루에 1갑을 피우는 사람이라면 월 135,000원이 든다. 1년 동안 이렇게 피운다면 성인 1명의 담배 값은 162만원이나 된다. 10년간 피운다고 가정하면 웬만한 자동차 1대 값과 맞먹는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발표되자 애연가들이 이번 기회에 기필코 담배를 끊어 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2000원을 올리는 것 뿐 아니라 이후에도 물가와 연동해 담뱃값을 꾸준히 올릴 계획이라니 걱정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연에 대한 정보를 뒤지는가 하면 보건소등에 금연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단다.
  우리 집에도 애연가가 한명 있다. 작은 아들 놈이다. 제 아버지도 피우지 않던 담배를 못 끊고 있어 만날 때마다 성화인데도 몇 번 시도 했지만 도루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담배 끊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백해무익인데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습관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담배의 중독성은 무엇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마침 추석에 내려온 아들에게 이번에는 담배를 끊어 보라고 권했더니 묵묵부답이고 대신 며늘아기가 “돈 만원은 해야 끊지 그 정도로 끊겠어요?” 하는 것이다. 몇 번 속다 보니 아예 기대 하지도 않는다는 눈치다. 정말 이런 생각이라면 담배 값 올리나마나가 아닌가. 아주 좋은 기회라고 쾌재를 부르던 나였는데 이번 기회도 놓치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담배 값 인상을 놓고 ‘꼼수 세수’라고 꼬집는다. 추가 된 세금이 금연과 흡연자의 건강관리와 흡연 예방을 위하여 쓰인다면 다행이지만 부족한 복지 재원을 채우는 데 쓰인다면 동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선 애연가들의 담배 사재기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에서 담배 사재기를 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과연 얼마나 효력을 발생 할 것인지 미지수이다.
   언제부터인가 흡연자는 천덕꾸러기, 눈치꾸러기가 되었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는 간접흡연이 흡연자 못지않게 피해를 주게 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담배를 피우는 가장이 집안은 물론 베란다에서도 쫓겨나 아파트 마당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직장이나 공공장소, 음식점이든 길거리든 버스에서든 흡연자가 설 땅은 좁아졌다. 여기다 가격이 배 가까이 뛴다니 당연히 끊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담뱃갑에 망가진 잇몸 사진이나 폐의 사진을 넣어 경각심을 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오늘 아들에게 담배를 끊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간절한 이메일을 썼다. 하지만 끊고 안 끊고는 본인의 의지이며 결심이니 지켜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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