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일, 내년 1월 1일부터 담배 가격을 2000원 인상하고, 앞으로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오를수 있도록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면서 내놓은 명분은 금연정책의 강화, 국민보건 증진, 건강보험재정 적자 만회 등이다. 외견상으로 보면 국민들을 위하는 정부의 살가운 배려가 담긴 정책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정부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가 몇이나 될까. 차라리 국민의 건강 운운하지 말고 속내를 내놓고 ‘증세’ 때문이라고 해야 모양새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무려 80%의 인상률이다. 현재 하루 한갑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부담하는 연간 댐뱃세는 57만원이다. 2000원 더 오르면 그 세금이 130만원이 된다. 130만원의 세금은 연봉 5000만원 봉급자의 소득세와 같은 수준이다. 흡연한다는 ‘죄’로 고스란히 5000만원 연봉자의 세금을 더 얹어 물어야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세수는 연간 2조8000억원이 확대된다.
그러면 국민의 건강을 그토록 간절히 원한다는 현 정부가 야당일 때에는 담뱃값 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나.
2005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진 청와대 회담에서 그는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는 노무현 정부의 담뱃값 500원 인상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공식 성명까지 내며 “흡연율 감소의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뜻에 거스르면서 세수확충의 목적 아래 이뤄지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 시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그같은 강성 어조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현 정부에게 돌아간다. 그때 반대했던 논리를 지금 똑같은 상황, 아니 그때보다 인상률이 4배이니 서민들에게 4배나 더 최악의 조건인 상황에서 정부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 할 것인가.
선진국일수록 직접세 비중이, 후진국일수록 간접세 비중이 높다. 그 ‘원칙’은 부자의 세금을 더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재분배한다는 명분과 닿아있다. 그런데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자질구레한 생필용품에 간접세 몇 백원 올려 쉽게 거둬들이는 것이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등에 뭉텅이 세금을 올려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쉽다. 부자에게 ‘저항의 위험’을 감수하며 목돈을 내놓으라 하는 것보다 만만한 서민들 쌈짓돈을 터는 게 여간 손쉬운 일 아니겠는가.
실제로 기재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2008∼2012년)까지 세법개정을 통한 10대그룹 감면 혜택이 10조6000억원이라 한다. 그 부족분이 공교롭게도 담뱃세 인상으로 인한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충당되는 것이다.
이제 ‘겉 포장’을 뜯어내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눈 가리고 아웅하듯,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소 40일간 입법예고하라는 행정절차법을 무시하고 담뱃값 인상안을 고작 4일간 게시하는 ‘꼼수’를 부렸던 정부는 이제라도 국민의 여론을 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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