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세월호 참사, 얼추 반년이 돼 가지만 점입가경이다. 경악과 슬픔이 나라를 훌렁 뒤집어놓더니, 그 여파가 사회 전반에 혼란과 분열을 몰고 왔다. 이젠 유족회 일부 임원의 눈총 받을 완장 행세로, 숙연한 슬픔과 위로의 물결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역겨운 짜증이 늘어간다.

 제왕과 왕후, 왕대비 승하시의 국상은 5개월 내에 마쳤다. 국가원수나 사회유공자 서거 때의 국장도 9일내에 마치고 국정은 정상으로 돌아간다. 일반인은 3일장, 길어야 5일장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뒤, 이렇게 오래고 질기게 나라를 혼란케 하고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는 까닭은 이해할 길이 없다. 서해페리호 참사 때도 25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천안함 피폭 때는 해군장병 46명이 순국했다. 그 외에도 숱한 사건 사고로 많은 국민이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 국민들의 경악과 탄식, 슬픔도 세월호 참사 때 못지않았다.

 그때도 사고원인 규명과 수습의 최종책임은 정부였다. 그러나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다. 사후수습이나 예방책이, 원혼은 물론 유족과 여타 국민들이 안심하고 만족할만한 수준에 미흡하더라도 정부를 믿고 맡겨 왔다. 미흡한 부분의 보강을 기대하고 기다려 왔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관료와 연관업자들 간에 얽힌 비리의 고리가 정부불신과 국민 분노를 불렀다. 대통령이 국가개조차원의 혁신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지지부진이다. 까닭은  사고당일 대통령의 ‘7시간’을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꼼수와, 자제력을 잃고 엉뚱한 길로 치닫는 일부 유족의 생떼 때문이다. 야당과 유족, 쌍방일치로 다수의 법학자들도 수긍 못할 억지를 부리며 참사수습에 족쇄를 채워 ‘국가개조차원의 혁신’을 헛구호로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뭘 바라고 왜 그러는지, 새민련 강경파는 유족들 비위를 맞춰가며 대통령과 정부 흠집 내기에 바쁘고, 유족들 일부는 야당 의원들의 머리꼭지 위에서 ‘완장’유세가 등등하다.   유족회간부는 세월호특별법2차합의안 수용을 설득하는 야당대표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이 담긴 법안을 가져 오라고 호통치고, 새민련 강경파수장과 나란히 단식농성 하던 유족 김영오 씨는 오만방자한 행태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유족회회장을 비롯한 임원일행이 그예 더 큰일을 저질렀다. 거기도 어김없이 야당국회의원이 한 몫 했다는데, 사안(事案)에 정치가 끼어들면 그 끝이 참 지저분해지는 전철대로, 이번 전말 역시 꼴불견이다.

 ‘아, 나 국회의원이야’(김현의원), ‘의원님 앞에서 버릇없다’(유족임원), ‘야, 너 국정원 직원이지?’(보좌관), ‘내가 누군지 아느냐?’(유족임원). 호출 후 30여분을 기다리다 화가 나서 그냥 가겠다는 대리기사에게, 만찬 후 자정까지 거나하게 술을 드신 의원님과 유족임원이 합동으로 벌인 ‘다구리(?)’촌극의 발단인가본데. 쌍방폭행이요 함정이란 주장은 납득 불가다.    일행의 말투가 오죽했으면 대리기사가 ‘인격적 대우’를 요구했을까? 국회의원의 오만, 유족임원의 완장유세, 보좌관의 국가기관에 대한 적대감, 일행일체로 안하무인의 특권의식에 젖은 방자한 행태다. 놀고먹다 세비 타먹고 욕을 먹어도 자정까지 술 먹을 여유가 있는 의원님에겐 30분이 대수롭지 않은 시간일지 몰라도, 대리기사의 자정 30분은 금쪽이다.

 그래놓고, 의원님이 손사래 치며 하신 말씀이나 출동한 경찰처사 또한 가관이다. ‘나는 안 때렸어요.’ 사과하고 수습, 화해시켜야할 의원이 제 발뺌이나 하려 한 거라면 그 의식수준에 의원 빼지가 통곡할 일이고,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역할이 무언지 가슴을 칠 일이다.

 
 일 저지른 유족회 임원들이야 물러난다지만, 여전히 당당하고 오만하실 의원님은 안녕하실 터. 이런 함량미달 의원이 한 둘이 아니니, 아무리 옳은 생각, 올곧은 신념을 가진 의원들도 싸잡아 욕을 먹을 수밖에. 정작 올곧고 존경받을 의원님들은 유권자 볼 낯이 없으실 거다.

 ‘나 국회의원인데..’ 그러니 어쩌라고? 대리기사 말대로 무조건 머리나 조아리란 말인가?

 산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을 인격이 있고, 죽은 사람은 누구나 산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인격은 고루 대접 하고, 슬픔은 엄숙하게 다스리며 사는 게 순리다. 감투나 재물이나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긍휼히 여기고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리기사를 대하는 의원이나 일부 유족임원이나, 그 마음이 곧 가진 것 없는 소시민을 대하는 마음일 터. 일꾼이 주인 능멸하는 꼴이고 상주가 조문객에 주먹질하고 궤연(?筵)마저 엎은 꼴 아닌가? 일부의 그릇된 행태가 유족전체는 물론 원혼들에게도 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자중했어야 했다.   짜증이 길면 분통이 터진다. 자중을 모르면 염치와 눈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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