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소설가)

 

 마을회관 남자방이 시끄럽다. 왈가왈부 왁자지껄 소란이다. 영한이 엄마와 양기 아버지를 놓고 언쟁을 벌이고 있는데  쉽사리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제 각각 제 말들을 내세우며 우기고 있는 것이다.
 영한이 엄마가 영한이 아버지한테 시집올 때만 해도 그녀는 아주 숫된 여자의 본보기였다. 첫날밤에 신랑이 고주망태가 돼서 색시 옷도 못 벗기고 네 활개를 편 채로 코를 드렁드렁 고는데도 그게 첫날밤 행사의 제일 첫 순서인가보다 하고 그 다음에 있을 일을 상상하느라 오들오들 떨며 밤을 홀딱 새웠다는 말이 지금까지도 마을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다. 그랬던 사람이 확 180도 달라진 건 그 고주망태 신랑의 무능 때문이다. “사람이 무골호인이면 뭐햐. 처자새끼 굶기지는 말어야 할꺼 아녀. 농사는 뒷전이고 날마다 퍼 대기만 하니 것두 신랑이라구….” “술 먹는 사람들 말 들어 보믄 술을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던디. 그래서 그러는가 부지.” “몰러유 난 그런 유식한 말은.” “술은 ‘백약의 으뜸’이란 뜻이랴. 내두 귀동냥으루 아는 기지 뭐.” “참, 말은 좋지, 하긴 온갖 시름걱정 다 잊어버리게 하구 허허허 즐겁게만 해주니 그럴 싸는 한 말이지만 그런 사람하구 같이 사는 사람은 말두 말아유!” “그럼, 영한인 어떻게 만들었남?”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구, 곤드레루 퍼져있는 걸 허리띠를 풀어내리구 억지루 끌어올려다 놨지유 뭐.” “뭣여 호호호, 그게 되던감?” “되도룩 했지유 뭐. 여하튼 영한이가 나왔잖어유,”
 영한이 아버진, 뒤늦게 양자한 양갓집 양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가 꽤 있지만 이를 통 돌보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술타령이니 누구보다 그 안사람이 안됐어서 양기 아버지가 농사일을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양기 아버진 한마을에 사는 영한이 아버지보다는 두 살 위이면서 일가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다. 이때부터 영한이 엄마와 양기 아버지와는 접촉이 잦아졌다. 농사일로 해서다. 일 때를 알고 양기 아버지가 스스로 오기도 하지만 혼자하기가 벅찬 일이 있으면 양기 엄마가 수시로 불러대는 거였다. 그래도 영한이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살고, 동네사람들은 두 집 일가 사이가 꽤 돈독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기간이 두 집 아이들이 성장해서 각기 짝을 맞아 대처로 살림났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서 이제 두 집은 내외들끼리만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한 해에 두 달 간격으로 두 집이 하나씩 짝을 잃었다. 영한이 아버지가 끝내는 그 술 때문에 간경화로 가고 그 석 달 후 양기 엄마가 난폭운전기사 때문에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다. 이에 동네서도 모두 이 두 집의 애사에 동정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영한이 엄마가 양기 아버지에게 조석이라도 끓여주기 위해 자기 집 문간방에 기거하도록 했다는 거였다. 동네서도 참 잘된 일이라고 머리를 끄덕 끄덕였다. 그런데 그해가 저물 무렵부터 해괴한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영한이 엄마가 문간방엘 수시로 드나든다느니, 어떤 땐 울안에서 여자의 투정어린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영한이 엄마가 양기 아버지한테 강짜를 부리는 소리 같다느니, 둘이 꼭 금실 좋은 내외같이 보인다느니 등등이다. 이런 말이 떠돌고 나면 어김없이 영한이 엄마가 동네집집을 돌아다니며, ‘그 인간 조석이나 끓여달라고 애걸 애걸해서 받아들였더니 무슨 불평이 그리도 많은지 성가셔 죽겠다느니, 늙은이가 하도 주책이어서 양기한테 데리고 가라 고 했다느니 하며 양기 아버지에 대한 포악을 늘어놓는 거였다. 그래도 둘은 지금까지 여전히 같이 있는 걸 보면 양기엄마의 그 포악은 제발이 저려 우정 늘어놓는 방패막이일 거라는 거였다.
 그래서 동네 남정네들이 모인 마을회관 남자방이 아까부터 시끄럽다. “아니, 영한이 엄마 옛날부터 양기 아버지 정부(情婦) 아녔을까?" "그럼 양기 아버진 영한이 엄마 정부(情夫)였게?” “그렇다면 죽은 영한이 아버지와 양기 엄마가 너무 불쌍한데!” “그건 아닐껴. 지금 두 사람이 같이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어 부부처럼 보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률상으로는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니 내연(內緣)이라는 게 맞을껴.” “‘내연의 관계, 내연의 처, 내연의 남편, 내연 남, 내연 여’ 어째 이것두 우리 마을 정서로는 말이 좀 흉악한데.” “그럼, 요샛말루 ‘절친 사이, 애인 사이’라면 어때?”
 이렇게 제각기 한마디씩 들고 나와 끝이 없는 걸 보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구이장이 점잖게 한마디 한다. “그냥 ‘그렇구 그런 사이’라구 그랴!”
 이 한마디에 시끄럽던 왈가왈부가 허허허 대번에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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