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 황 (논설위원. 시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대회에는 못 미치지만 한심하고 갑갑한 세월 호 정국으로부터 잠시나마 고개를 돌릴 수 있어 다행이다.
지난 9월 19일 개막한 ‘제17회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조금이나마 백성들의 상심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OCA소속 45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첫 대회로서 선수와 임원만도 총1만3855명이 참가했다. 그중에서도 중국세가 단연 두드러진다. 금메달 수를 떠나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중국의 쓰나미가 무섭다. 13억 인구를 지원군으로 등에 업고 인천 앞바다를 첨벙 첨벙 건너오는 점령군의 위용이다.
“중국 사람이 한꺼번에 발을 구르면 일본이 뒤집히고, 한꺼번에 오줌을 누면 한국에 홍수가 나고, 동시에 소릴 지르면 모두 귀머거리가 된다.”고. ‘웃기는 짬뽕’으로만 들었던 어릴 적 우스개가 이제는 그럴싸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중국 선수단은 참가인원 1322명(선수 894명)으로 개최국인 한국을 앞질렀다. 방송채널확보나 경기장 입장권 예매도 단연 1위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요우커(游客:중국인 관광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해 1억 명을 상회하는 ‘요우커’들의 발걸음이 전 세계의 관광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번 대회기간 중에 한국을 찾는 중국관광객의 수가 16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누적관광객수도 6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인당 씀씀이를 236만 원으로 볼 때 14조가 넘는 시장이다. 한국 내수시장이 충분히 들썩일만한 규모다.
문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내실을 챙기지 못하는데 있다. 일부 업체에서 ‘중국관광객 전용매장’을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한류로 살려놓은 ‘특수’가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 한국 관광이 가깝고 ‘싼 맛’에 오는 ‘B급 관광지’라는 오명(汚名)을 얻기 쉽다. 재방문율에서 그 일면을 볼 수 있다. 일본인 관광객의 경우 우리나라 재방문율은 64.3%인데 비해 중국관광객의 경우는 29.7%에 불과하다. 이런 판국에 다른 외국관광객들과 차별대우까지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짝퉁천국’, ‘싸구려관광’에 ‘사재기 쇼핑’으로 그들을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한류3기’를 맞았듯이 요우커의 수준도, 인식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미국과 더불어 당당히 G-2 국가로서 급부상했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지난 9월 중국 유통업체 바오젠의 직원 1만1000여 명이 한국 관광을 왔다. 방한 중 이들이 쓴 돈만 4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로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한 해 500만이 넘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요우커’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과 연구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짱깨’라는 저급한 귓속말로 그들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쇼핑은 서울에서, 잠은 경기도 일원에서, 관광은 제주에서 하는 식의 ‘따로국밥’ 관광시스템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
중국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웃이다. ‘한류특수’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넝쿨 째 굴러 온’ 그들을 스스로 내쫒는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13억 인구에, 1억의 요우커를 가진 ‘잠룡(潛龍)’의 수염을 일부러 건드릴 필요는 없다. 
‘조공(租貢)과 책봉(冊封)’이라는 지난 역사의 흉터를 기억한다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회전을 지혜롭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소비패턴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브랜드 의류나 화장품을 싹쓸이 하던 그들이 이제는 ‘한류문화’를 통째로 사들이려 하고 있다. 방송사만도 3000개에 달하는 중국이 ‘크리에이티브 쇼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콘텐츠는 물론이거니와 아예 작가와 PD까지 한 바구니에 담아가는 실정이다. 이제부터라도 바꿔야 한다. 차를 즐겨 마시고 입식문화에 익숙한 ‘요우커’에게 물 대신 차를, 방석대신 의자를 권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환링꽝린(歡迎光臨, 어서오세요)’을 외치며 ‘요우커’와의 동거를 시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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