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현 (충북테크노파크원장)

 

 길기만 했던 폭염이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노란 낙엽으로 뒤덮인 길 위로 깊어가는 가을을 보면서 계절변화의 신비에 새삼 놀라며 여느 계절과 마찬가지로 주변 환경 모두 바뀐 계절에 시나브로 적응해 나가고 있다.
  계절 변화에 동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용어 내지는 개념들이 핵심정책과 함께 쓰여 지곤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 협치, 창조경제, 현장중심 행정, 손톱 밑 가시 뽑기…
  이런 많은 신조어가 탄생하는 속에서도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핵심단어가 있다. 기업육성을 위한 산·학·연·관 ‘협업’이다.
  요즘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장군의 이야기는 이러한 점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장군은 전 세계 해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23전 23승의 신화를 기록했다. 이 배경에는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 등 삼도수군이 함께 협업이라는 훌륭한 전략을 구사했기에 가능했다. 협업전략을 통해 미리 이겨놓고 난 후에 싸우는 ‘선승구전(先勝求戰)’ 전술이 주효했던 것이다. 특히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장군은 궤멸된 조선수군의 잔여 인력을 모아,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둔다. 이 승전의 일등공신은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 때문이었겠지만 이면에는 지형지물과 지역생태에 밝은 지역백성들과의 협업을 통해 필승전략을 마련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주변 환경과 협업을 통해 미리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협업은 기다림과 여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의 가치관이나 철학뿐 아니라 이해관계나 상황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의 하나인 한산도대첩에서 일본장수 와키자카야스하루는 전쟁의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가토 요시아키 등과 같은 수군에 편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출전하여 이순신장군의 학익진 전술에 의해 대패를 당하고 만다. 이에 도요토미히데요시는 해전금지령을 선포했다. 남해의 재해권을 빼앗긴 건 당연했다. 해전사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 헐버트(Hulbert,H.G.)는 ‘이 해전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협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역지사지, 포용력, 이해력 등 다양한 덕목을 갖추지 않고는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으며 이러한 덕목의 기저에는 기다림과 여유가 깔려있어야 한다. 마음만 급하면 협업의 당위성을 부르짖는 데만 시간을 낭비하고 정작 협업에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한다.
  기업육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최적의 기업육성전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모든 산·학·연·관 주체가 전사적으로 참여하여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협업이 필요하다. 어느 한 곳이라도 기관의 이익에 편승해 칸막이를 치는 순간 기업육성전략은 침몰된다. 협업이란 개개인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단체의 일원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기술력 하나로 창업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파도는 생각보다 거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창업인큐베이터(Startup 또는 Seed Accelerator) ‘Plug and Play’와 같은 기업육성 시스템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우리 상황에서 이런 기술기반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산·학·연·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등 협업을 통해 각 기관의 역량을 총결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 정부 최대의 화두 창조경제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아마도 산·학·연·관이 꾸준한 소통을 통해 ‘협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리라. 그 안에서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와 기술혁신으로 중소 벤처기업을 중무장시켜 더 이상 팔로어기업이 아닌 위대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형 혁신 스토리를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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