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한 것을 읽다가 갑자기 ‘과연 이 사람이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한국기업가에게서 볼 수 없었던 재계에 대한 거침없는 내용과 도발적인 발언들 때문에 그의 사고와 인식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기업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그는 ‘상의는 다른 경제단체와 달리 순수한 이익단체가 아닌 법정단체다. 따라서 상의의 목소리는 바르고 옳고 정확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어느 상의회장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일부 경제단체가 주도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반대에 동참을 거부했고, 재벌 총수 유죄판결에 대한 유감논평도 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다른 경제단체들이 반대하는 정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언사는 2005년 ‘형제의 난’속에서 분식회계혐의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던 경험에서 많은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법을 어기는 일탈행위를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그동안 기업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만큼 앞으로는 사회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기업이 사회적 존경을 받으려면 국가경제와 고용에 진짜 기여하고 일하는 방식이나 언행 등 모든 것이 사회에서 존경받을 만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대기업이 돈이 된다고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것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찬성했고 복지재원 마련 등 단기적인 필요성이 있다면 부자증세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다만 부자증세를 위해서는 부자들에 대한 설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일몰제로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개처럼 벌어서 그냥 개처럼 쓰는 기업가가 아니라 합리적인 기업가였다.   
 박용만회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피케티가 떠올랐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오히려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피케티의 경우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상위소득층에 대한 누진과세를 통해 얻은 세수로 공교육과 국민건강에 투자하는 것이 불평등 감소는 물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불평등이 극심해지면 첫째 성장에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분배에 의해 오히려 성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불평등심화는 민주제도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두 사람의 주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부자들에 대한 세금부과를 통해서 양극화와 복지문제 등 사회문제해결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일견 서로 다른 진영에 있는 듯한 두 사람이 사실은 같은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중국인의 협상전술이라는 求同存異가 생각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점도 있지만 따져보면 같은 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2011년 빈부격차 심화와 금융기관의 부도덕성에 반발하면서 미국 월가에서 시위(Occupy Wall Street)가 일어났을 때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회장은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며 주자증세를 주장하였다. 또한 영국에서는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노인들에게 일정액씩 나눠주는 난방보조금을 삭감하려고 하자 부자노인들이 자신들의 보조금을 사회복지단체에 자진 반납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즈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이유로 오너 일가 중심으로 경영되는 재벌이 편법적인 경영권승계나 상속세 탈루,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비도덕적’ 지배구조를 들었다. 그동안 선진국부자들은 공존공생을 하는 법을 배웠지만 우리 부자들은 독자생존하는 법만 배웠다. 박용만회장의 발언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의 사고가 재계의 선한 바이러스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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