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소설가)

 

 고스톱을 하는데, 돈을 걸어야 재미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라는 것은 돈을 따면 내 것이 되는 재미, 내 돈을 떼이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남의 돈을 따려고 긴장하고 경쟁하는 재미를 말한다. 이런 말이 왜 나왔느냐 하면, 처음엔 경로당에서 안노인들이 고스톱용으로 자신들이 마련해 놓은 동전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도 서로 많이 따려고 눈에 불을 키고 상대방을 견제하며 떼거리까지 부려댔다. 그래서 그런대로 긴장과 경쟁의 재미도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판을 끝낼 때는 누가 많이 따든 적게 따든 그 동전들을 도로 다 회수하는 데 있었다. 내가 죽어라 열심히 해서 땄는데 내 것이 되지 않으니 허망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누구한테서 나왔냐 하면, 매번 할 때마다 떼거리를 쓰며 따는 양기엄마에서다. 하도 양기엄마가 억지를 부리는 통에 각자 제 돈을 걸기로 한 것이다. 단 잃은 돈이 500원이 넘으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어디까지나 노름판이 아니고 고루에게 기회를 주는 재미판이 아니냐는 데서다.

 그런데 이 규칙시행 며칠 후 양기엄마가 판에 나오질 않는다. “그 할망구 전 같이 늘 따질 못하고 잃기만 하니 재미도 없구 승깔이 나서 안 나오는 게 뻔햐.” “지가 그렇게 하자구 한 거지 뭐 누가 그렇게 하자구 했남!” “제 무덤 제가 판겨. 늘 딸 줄만 알었지만 내 돈 잃는데 누가 봐줘!” 이렇게들 한마디씩 하는데 한 할미가 다른 말을 한다. “아녀, 그런 게 아녀!” 하더니, 양기엄만 둘째네로 가버려서 여기 큰아들 집에 없다는 것이다. “아니, 왜 그랬댜?” “그느므 똔 때문이지 뭐, 여기 맏이가 둘째를 돌보지 않구 몰라라 한다나 워떻다나.” “그 집 아버지 생전에 몫몫이들 나누어 줬다구 했잖아.” “그런데두 무슨 사단이 있는지 제 형한테 자꾸 손을 벌리는 모양여.” “그래 맏이가 안 주니께 에미가 홧증이 나서 데모를 하는구먼. 맏이가 무슨 죄여. 사람이 온전하기나 하나 무녀리라고 에미가 못마땅해 하먼서.”

 


 양기 엄만  언행이 좀 모자란 양기를 보고 무녀리하고 아래형제들보다 낮추어 대했다. 그러한 티가 너무 드러나 동네사람들이, “‘무녀리’는 욕여, 한 배의 여러 마리 중에서 맨 먼저 태어난 짐승의 새끼를 말하는겨. 짐승의 새끼한테나 쓰는 말을 사람의 귀한 맏아들한테 쓰니 욕이지. 원래 본말은 ‘문열이’인데 제 에미 뱃속의 문을 제일 처음으로 열고 나오자니 얼마나 힘들었겄어. 그래 용을 쓰고 애를 쓰며 꽉 닫친 문을 뚫고 나오느라 어린 것의 마음과 몸이 지치고 이지러져 몸집도 작고 못생겼지. 그래서 사람도 언행이 좀 모자란 못난 사람을 문열이 즉 무녀리라고 낮춰보게 된 거라네. 따지고 보면 아래동생들이 고생 덜하게 길을 닦아 놓느라 희생한 맏이인데 말이지. 그러니 자네도 맏아들 양기를 아래애들보다 위해줘야 하는 거 아녀?” 하고 에둘러 나무랬다. 그런 걸 알고 있는 양기아버진 살아생전에, “양기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집장자여 그러니 우리 내외가 죽어서 젯밥을 얻어먹어도 장자에게 얻어먹을 것이고 선대들 제도 장자가 받들 것이고 하니 내 유산도 장자인 양기에게 아래애들보다 좀 더 떼어 줘야겄어. 아래애들도 그것만 가지면 제 앞가림들은 충분할 터이니 불평불만들은 없을껴.” 하더니 정말로 그렇게 시행하고 양기엄마보다 먼저 갔다. 그런데 둘째가 문제였다. 제 몫을 가져가서 뭐 한다 뭐 한다 하더니 모자란다며 제 형한테 와서 사정사정하여 700여 평짜리 밭을 팔아가서는 홀랑 날려버리고 제 처와 이혼까지 했다. 한데 이러한 걸 번연히 알면서도 양기엄만, 형이 돼가지고 못 살고 안 된 둘째를 더 보살펴주지 않는다고 양기만 죽일 놈 사릴 놈 하면서 몰아붙이는 거였다. 그러더니 결국은 양기엄만, “네 동생 꼴 보기 싫어 도와주지 않는 것 내 다 안다. 하지만 내 것 내놔라. 이 집이며 네가 가지고 있는 전답 다 네 아버지와 내가 보전했으니 절반은 내 것도 된다. 그것 내놓아라. 안 내놓으면 동네방네 떠벌리고 콱 죽어버릴껴.” 하며 막무가내로 억지떼를 쓰는 바람에 양기가 겁이 나서 얼른 농협에 가서 얼마를 변통해 주니 그걸 가지고 생전 큰집에는 오지 않겠다며 둘째네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양기는 아무래도 이러는 어머니께 불효인 것 같아 어머니가 되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는 것이다.

 이걸 들은 동네경로당 고스톱 패 할미들은 맘 여려빠진 양기를 위해서도 양기엄마를 데려와야 한다면서 그 미끼로 고스톱 판에서 무조건 잃어줄 것을 내세우기로 합의했다. 그리곤 이튿날 단체로 그 둘째 네를 향해 동구 밖을 나섰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