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 상임이사)

 

나날이 출근길 풍경이 달라진다.

차창 밖 시야가 환해진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노란 잎으로 갈아입는 은행나무 가로수 때문이다. 열병을 하듯 줄지어 선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을 보니 문득 지난 여름 저 자리에 이 나무들이 있었던 것일까 싶게 기억이 생소하다.

은행나무 잎을 보면 부채꼴 같은 모습에 이파리 끝이 갈라져 있다. 저 잎의 모양을 빗대 사랑을 얻은 시인이 있었지.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에는/ 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어/…/ 둘로 나누어진 한 생명체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대는 내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둘임을.”

66살인 괴테는 30세의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네에게 이런 연애시 ‘은행나무 잎’을 보내 사랑을 얻었다.

노란 은행잎은 학창시절, 책갈피에 꽂아두는 1순위 나뭇잎이었다. 색이 바래지도 않고 쉽게 부서지지도 않아서 잎에 좋아하는 시구를 적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잎에 방충작용을 하는  부틸산 등 여러 화합물이 들어 있어서, 잎을 책 속에 넣어두면 책에 좀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마늘밭에 이파리를 뿌려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아 유용하고 잎에서 추출되는 징코플라본글리코사이드가 혈액순환 개선제로 쓰인다는 것도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다.

그저 눈을 들면 주위에 가까이 있는 편안한 나무, 그 은행나무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홍천의 은행나무 숲을 본 뒤였다. 어느 해 가을이던가, 중국 연길시에서 온 문인들을 안내해 홍천 은행나무 숲을 갔었다. 그때 그들은 그곳에 모인 차량과 인파를 보고 놀라워하며 유적이나 유물이 아닌, 숲이 문화자산이 된다는 것에 감탄을 했었다. 그래서 편백나무 숲이며, 우포 늪지며, 순천만 갈대숲 등의 얘기를 해준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새 몇 번의 가을이 지난 것 같다.

생태공부랍시고,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은행나무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생기게 됐다.

은행나무에 대한 첫 의문은 은행나무가 활엽수일까, 침엽수일까였다. 잎이 넓으니까 활엽수같지만 씨의 모습이나 생태는 침엽수와 비슷하다. 정답은 은행나무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오로지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나무이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려 2억년 이상을 그렇게 한 종으로 외롭게 자라온 고독한 나무이다. 그래서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행나무를 사랑한 이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는 공자이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 그늘에 단(壇)을 만들고 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부르고 지금도 공자와 관련되는 교육기관의 뜰에 은행나무를 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게 점잖은 은행나무가 길가의 가로수로 나오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은행나무가 갑자기 가로수로 뜬 데는 이 나무가 지닌 대기 정화 능력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생장이 빠르고 공해에 강해서 어떠한 토양에서도 강인하게 살 수 있으며, 산소 배출량이 많은 대신 이산화황과 미세먼지 분진 등 오염물질의 흡수력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현재 전국의 가로수 중 은행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24%로, 25%인 벚나무 다음으로 많으며 도시지역은 40%를 웃돈다.

 


그런데 최근 이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암나무의 열매인 은행이 풍기는 악취 때문에 지자체마다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결국 일부 지자체들은 고민 끝에 암나무를 제거하고 수나무만을 살리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암꽃만 피는 암나무와 수꽃만 피는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의 식물이다.

이들은 서로 공존해야 생태계 균형이 잡히고 안정이 된다. 만일 암나무 없이 수나무만 선택적으로 심는다면, 심각한 자연의 불균형이 될 것이다. 잠깐의 냄새 때문에 아예 나무를 없애버리려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무섭다. 이 고운 가을, 바람에 잎을 날려 보내는 은행나무들이 오늘따라 떠 쓸쓸해 보인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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