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커스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그에게 환한 빛이 비치었다. 그는 땅에 엎드렸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다마스커스로 가라. 네가 할 일을 알려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9:3-6)

사울은 스테파노 처형 바로 뒤에 위와 같이 극적인 상황을 맞는다. 이 사건을 후세 사람들은 다마스커스의 고통이라 부른다. 사도 바울의 삶은 이 다마스커스의 고통 이후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화려했던 이전의 삶을 순식간에 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교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예수의 제자들은 주로 유대땅에서 선교를 하였지만 바울은 코린토 에베소 아시아 아라비아 등 이방 선교에 주력하였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그의 이력은 화려했다. 아브라함 후손으로 할례를 받았다. 왕족의 가문인 벤야민 지파이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혈통을 지녔다. 율법으로도 견고해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를 핍박하는 바리새인이었다. 유대의 절대적 기득권 출신으로 교회 박해자였으며, 예수 사후 최초의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름은 희망, 하느님께 구한다는 의미를 지닌 사울이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 고통 이후로는 ‘작은 자’란 뜻을 지닌 바울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자신을 종이라 칭하며 복음을 위해 택함 받은 자이며 당당히 사도로서 행동을 하게 된다. 투옥, 굶주림, 헐벗음, 매 맞음, 죽음의 위기, 불면을 겪으며 이방 전도에 전 생애를 바친다.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 좋은 예라 하겠다. 호화로운 기득권을 버리고 형극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바울의 변화는 위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의로웠으나 권력을 얻고 나서 부패하는 승리하면서 실패한 인생들에 비하면, 한 때는 죄인이었으나 정의로운 길을 걷는 실패하면서 승리하는 인생은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그런 이에게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보인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방천지 구석구석 다 뒤져도 내 삶을 살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이뤄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자아의 신화는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을 통해 구현된다. (파울로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사람은 누구나 생의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늦게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불러 로스 등 ‘인생수업’ 중에서)

당신의 각본은/아직도 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당신이 바로 그 각본의 지은이입니다/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쓰십시오/물론 여러 가지 도전이 있겠지요/그러나 극복할 어려움이 없다면/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겠습니까?//지금 이 순간 당신이/자신의 사망기사를 쓰고 있다고/상상해 보십시오/당신은/당신 일생의 과업에 대해 만족하시나요?/만약 만족하지 않는다면/당신의 삶이 아직도/완성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오늘은 바로 당신을 위해 있는/적절한 시간입니다//다시 시작하십시오/당신은 최선의 당신이 될 수 있는/힘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잘못이란 지워질 수 있습니다//늘 기억하십시오/결코 이미 늦지 않았다는 것을. 결코/당신의 맥박을 짚어보십시오. (MM 마고 시집 ‘그대가 성장하는 길’ 중 ‘당신 자신의 각본을 쓰십시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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