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침경-영추’

 

중국 ‘황제내경’의 그늘 아래 ‘영추’라는 이름으로 1000년을 보낸 고려의 침술 경전이 긴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의 독자들을 만난다. ‘고려침경’의 부활이다.

충북예고 교사인 정진명(55·사진)씨가 최근 ‘고려침경 영추’를 발간했다.

이 책은 그동안 중국 ‘황제내경’의 한 부분으로 있던 ‘영추’를 ‘고려침경’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고려에서 진상된 ‘침경’이 송나라 교정의서국에 의해 그동안 ‘황제내경’으로 둔갑해 중국의 유산으로 내려왔던 것.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영추’가 ‘황제내경’이 아닌 고려의 ‘침경’이었음을 단단히 못 박는다.

또한 집중 연구와 새로운 해석으로 송나라 교정의서국에서 편집하기 이전의 원래 형태로 재편집해 ‘고려침경’으로 탄생시킨다.

동양의학의 시작과 끝으로 일컬어지는 ‘황제내경’은 ‘소문’과 ‘영추’ 둘로 이루어진다. ‘소문’이 의학 일반론에 관한 것이라면, ‘영추’는 처음부터 침뜸을 염두에 두고 편성되고 쓰인 침책이다.

정씨는 “이후에도 침에 관해서는 ‘침구대성’이나 ‘침구경험방’ 같은 좋은 책들이 나오지만, 그것들은 아무리 좋아도 ‘영추’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며 “그만큼 ‘영추’는 침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훌륭하고 위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침의 종주국은 고려임을 이 고려침경이 증명하고 있다. 동네 구석구석까지 침술이 스며들어 백성들의 질병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정착한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 바로 이 고려침경의 전통이 있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 책은 ‘영추’를 새롭게 재구성해 우주, 사람, 침술, 잡병 등 4부로 구분한다. “소우주(인간)는 큰 우주 속에 살기 때문에 숨 쉬는 것 하나까지도 큰 우주의 영향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정씨는 큰 우주에 관한 논의를 1부로 했다.

별자리의 움직임, 네 철의 변화, 맥과 기운의 변화 등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음양5행을 배치했다.

2부 ‘사람’에서는 사람의 몸에 관한 생각을 모았다. 정씨는 “동양의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큰 우주와 소우주가 소통하는 방식인 ‘기’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이 지닌 비밀은, 큰 우주의 기운이 소우주의 몸에 흐를 수 있는 소우주 안의 질서와 방식으로 이것이 바로 경락이다. 그래서 맨 앞에 경락을 다루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 자체의 모양, 몸의 모양과 특징 등을 정리하고 있다. 3부 침술에서는 침의 종류, 원리, 방법이, 4부 잡병에서는 한열병, 전광, 열병 등 병의 증상과 처방 등이 소개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이했다는 점. “우리말로 생각하고, 우리 눈으로 우리 몸을 바라보고, 우리말로 드러내야만 진정한 한의학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는 한문을 전혀 모르는 독자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용어부터 문장 구조까지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말로 옮겼다.

국어교사이며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저자의 역량이 고스란히 발휘된다.

그는 “한의학계에서 한문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정보가 손쉬운 말로 정리돼 공개되고 온 백성이 탈의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의학의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1960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충북대를 졸업했다. 1987년 ‘문학과비평’에 시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저서로 ‘우리 침뜸 이야기’, ‘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한국의 활쏘기’, 시집 ‘회인에서 속리를 보다’ 등을 발간했다.

온깍지궁사회 창립 회원이며,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로 활동하고 있다.
학민사. 502쪽. 3만8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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