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침례신학대학 교수)

 

‘우리는 이런 권력에게 국가 개조를 맡기지 않았다.’ 글 쓰는 이들의 선언이다. 세월호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지난 6월 2일 문학의 공방에서 나와 현실문제에 연대한 것이다. 전쟁에서도 국민을 구해야하는 국가가 물에 빠진 국민을 구해내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사회 전체가 놀라움과 경악으로 압도되어 휘둘리고 있을 때, 문학인들은 옳지 않은 권력에 경고하고, 문학의 존재이유를 점검했다. 정의를 말하면서 협잡을 해체할 것이며 공동체를 껴안으면서 권력의 폭력을 고발할 것이라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해서라면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이것이 문학의 윤리이며 문학이 말하는 자유임을 믿기 때문이라고. 문학인들은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를 발간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유가족들 단식에 동참했다.

계간지인 『문학동네』는 가을호에 세월호 특집을 채웠다. 순식간에 절판, 많은 이들이 작가 시각을 거친 세월호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학잡지가 절판되는 아주 드문 일이 일어났다. 잡지사는 독자들의 다급함을 알아채고 ‘더 많은 이들에게 신속히 전달하려는 다급한 심정’으로 특집 부분만 단행본으로 출간한다고 또 썼다. 책 제목은 소설가 박민규의 글 그대로 『눈먼 자들의 국가』. 박민규는 ‘사고’와 ‘사건’을 구별한다. 배가 좌초한 것은 사고이고, 사람을 구하지 않은 것은 사건이라고. 그 둘을 구별하는 이유는 책임의 주체를 분명하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세월호 사고는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썼다. 책 편집자 말대로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고,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은 진실을 산출하고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므로 우리는 대면하고 응답해야 하기 때문. 누가 그 사건에 책임이 있고, 누가 응답해야 하는 가도 더 선명해 질 것이기 때문.

우리 사회는 몸서리나는 사건을 겪으면서 울고, 미안해하고, 마음을 모으고, 동정하고, 분노하고, 허탈해 했다. 이제는 잊고 싶어한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데 언제까지 세월호를 붙잡고 있느냐고 한다. 마치 유가족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한 것처럼, 유가족들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들이 조용히 있는 것으로 경기부실의 책임을 져야 하듯이 논리 틀어진 방향. 너희 슬픔 때문에 귀찮고 번거로운 것 싫으니 좀 조용히 하라면, 내 애도 끝났으니 네 애도도 끝내라면 덜 슬픈 자들의 폭력, 원인을 덮어버리는 일에 무연히 동승해버리는 무심한 잔혹은 아닐까.

경기 어렵고 살아나야 하고, 소위 세월호 피로는 사실의 차원이다. 진실의 차원에서는 그러니까, 그래서 세월호 관련자들을 얼른, 제대로 가려내지 않는 이유를 물어야 맞는 건 아닌가. 어떤 논리로 무장한 어떤 힘이 사건을 유야무야 시간 끌기로 붙잡아두며 본질을 흐려대는지 물어야 맞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그 엄청난 사건과 관련된 협잡 댓가가 누구 아파트 사는데 들어갔는지, 누구 자식 딴 나라 유학 보내는 데 들어갔는지, 누구 외제차 사는데 들어갔는지, 누구 선거자금으로 혹시 들어갔는지 지켜보아야 맞는 것 아닌가. 그걸 촉구하는 것을 국민 권리로 여기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우리 애도방법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걸 밝혀야할 위치에 있는 이들을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어 협잡 혐의를 두게 됐다면 유족이나 국민이 지켜볼 수 있게 하면 되지 않는가.

 


유족들은 보상금이 아니라 왜 자기 가족을 안 구해줬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데  정치권은 자기들 이야기를 하고, 언론은 보상금 총액을 자꾸 흘려보내면서 죽은 사이비 교주네 재산 찾는 일을 부각한다. 이 만큼 우리 사회에서 돈을 줄 것이니 충분한 위로가 될 만하다는 여론 조작인지. 그 앞에서 가족 잃은 통한, 죽은 이들 아까움은 조롱당한다. 진심으로 슬퍼했던 국민 눈물도 모욕당한다. 이 책에서 글쓰는 이들은 사건을 조사하고 일깨우고 기록하고 제기한다. 잊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다짐했던 우리 아니었느냐고 그 약속은 계속 유효하지 않으냐고 국민을 구하지 않은 국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대로 물을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진실을 묻는데 돈을 들이내는 경박함, 책임을 묻는데 용서를 들이대는 무지함으로 슬픔과 억울함을 조롱하는 건 사람으로 할 짓 아니라고 통절하게 묻는다. 그런 취지 때문일지 이 책은 뒷 날개에 다른 출판사가 펴낸 세월호 관련 책까지 소개한다. 책 값도 참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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