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걸림돌은 ‘대북 전단’이었다.
30일 열릴 예정이었던 고위급 접촉은 남북이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면서 물건너가게 된 것이다. 10월 말~11월 초 개최라는 애초 합의 이행 여부에도 의문부호가 찍힌다.
사실, 북한 실세 3인방의 전격 방문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순항을 예상됐었다. 그러나 북한은 “고위급 접촉 개최냐, 전단 살포냐”를 선택하라고 남측을 압박했고, 정부는 “전단 문제로 남남갈등을 부추기지 말라”며 맞섰다. 꽉 막힌 형국에서 누구 하나가 양보하지 않으면 돌파구는 찾을 수 없다.
북측이 대북전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최고 존엄’이 대북전단으로 인해 크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남측의 이에 대한 반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가정을 세워야 하는 근거는 고위급 접촉 자체가 그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서로 옳은 말인데, 서로 다르다. 극과 극을 치닫고 있는 이런 입장 차로 인해 고위급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간 대화와 이산가족 문제, 정상급 회담 등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제들 앞에는 온통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이토록 얼킨 실타래를 풀 방안은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남북이 서로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텍스트를 들여다 보면 문제의 해결점이 보인다. 그들이 그토록 민감해 하는 ‘최고 존엄’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인정은 않되 ‘방기’해 보는 것이다. 대북 인식이니, 안보니 하는 말은 여기에 껴들어선 안된다. 터놓고 말해, 우리 국민들 가운데 김정은이나 김정일, 김일성을 ‘최고 존엄’으로 인정할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 체제를 인정하고 이해해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먼 후일 통일된 대한민국이 찾아오면, 그 통일 한국의 국민들이 분단됐던 남과 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남북은 축구경기를 하고 있되, 기울어진 그라운드에서 공을 차고 있다. 경제적으로, 체제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면에서 남북을 서로 비교해 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앞서 있다. 앞서있는 만큼 ‘통 큰’ 양보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상호비방 중지’라는 서로간 합의에 따르더라도 대북전단 살포는 자제되어야 한다.
연천군의회와 파주시의회가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점 사격’ 운운하는 북한의 태도에 불안감을 떨칠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측은 남측에 사격을 하기도 했다.
현실적인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정부의 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남남갈등’ 운운할 문제가 아니라, 대북 전단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과 마찰을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현명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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