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진 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로마 시대의 풍류시인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Publilius Syrus)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이솝 우화에도 ‘죽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평등하게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

과연 그러할까.

최근 일어난 여러 죽음을 살펴보면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엄연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얼마 전 ‘칠곡 계모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겨우 8살짜리 의붓딸을 마구 때리고 넘어뜨리는 등 수년간 상습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군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으로 온 몸에 멍이 시퍼렇게 든 채 숨져간 ‘윤 일병 사건’도 가슴 아픈 일이다.

10대에서 20대 초반 남녀가 집단으로, 가출한 여고생을 감금한 뒤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성매매를 강요하고 끝내 무참히 살해한 사건도 충격적이다.

가해자들은 숨진 여학생에게 토사물을 핥아먹게 하거나 몸에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심지어 살해한 후에도 휘발유를 뿌려 태운 것은 물론 시멘트를 반죽해 시신 위에 뿌려 사체를 은폐하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다 못한 60대 어머니가 30대 두 딸과 함께 동반자살한 사건은 비통하기만 하다.

이 어머니는 두 딸과 자살을 결심한 뒤 “주민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유서와 함께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수백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가져온 세월호 참사는 아직까지도 사회적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 희생자들에 비해 일반인 희생자들은 모든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되는 듯하다. 그들은 추모공원 안치 대상에서조차 제외될 정도로, 학생 희생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대우를 받기도 했다.

최근엔 대중가수인 신해철이 사망하자 언론들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에 열을 올린다.

위에서 언급한 죽음들 가운데 어느 죽음 하나 안타깝지 않고 비통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과 접근 방식은 너무도 다르다. 계모의 참혹한 학대로 감당하지도 못할 극도의 공포와 처절한 고통을 안고 스러져간 8살 어린소녀의 죽음 앞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반성과 변화를 가져왔는가.

선임 병들의 폭력 앞에 온 몸이 시퍼렇게 멍든 채 고통 속에 숨져간 윤 일병 사건에 대해 사회적 논의와 개선 요구는 어떤 사회적 파장을 도출했는가.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렇게까지 참혹한 행위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분노와 비통함을 던져준 김해 여고생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는 또 어떤 변화들이 생겨났는가.

경제적 고통에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집주인에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긴 송파 3모녀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복지시스템과 경제적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더 커졌는가.

부모나 형제가 죽었다 해도 200일 넘게 추모하고 애통해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 사회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선 200일이 넘게 리본을 달고 현수막을 내걸며 애도하는 이 아이러니한 세태는 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한 대중가수의 죽음 앞에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잊지 않겠다’고 추모하는 사회적 현상은 어떤 시각과 관점에 기인하는 것일까.

모두가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처절한 죽음이지만, 그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관점과 시선은 사뭇 다르기만 하다.

지난 토요일, 친구 부친이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에 조문을 다녀왔다.

유가족과 지인들의 순수하고 진정한 애도와 추모 속에 어쩌면 행복한 이별일 수 있는 평범한 한 노인의 죽음을 접하면서, 문득 이 사회가 왜 ‘모두가 평등해야 할 죽음’을 애써 차별하고 구분하고 다르게 만들어가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정치적 혹은 이념적으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그 이해관계에 숨겨져 있는 의도와 목적대로 순진한 대중심리와 군중논리를 촉발하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그 의도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죽음과, 그저 가족과 지인들의 안타까움 속에 조용히 떠나가는 죽음과, 죽음조차 왜곡되고 폄훼되고 비하되는 죽음으로 나뉜다는 답에 이른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는 이상(理想)은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평등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힌 환상논리(幻想論理)에 지나지 않는다는 씁쓸함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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