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차기 대선후보 영입설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반 총장의 고향인 음성을 중심으로 층북도민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굉장히 위험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새누리당 친박 인사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반 총장의 출마가능성을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연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3일 자신의 회고록 '순명' 출판기념회에서 "우리가 영입해서 (당내) 다른 후보들과 같은 위치에서 경선을 시켜야 한다"며 "반 총장 쪽에서 와서 새정치연합쪽 대선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정작 반 총장 본인은 지난달 "몸을 정치 반(半), 외교 반(半)에 걸치는 것은 잘못됐다. 안 된다"고 말했다 한다.
대선을 3년여나 남겨놓은 시점에서 여야가 앞 다퉈 반 총장 영입 얘기를 꺼내는 표면적 이유는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치권 인사들은 공히 정통외교관료 출신으로 세력기반도 없는 반 총장이 국내정치의 흙탕물에 뛰어들어 대중 앞에 민 낮을 드러내는 순간 지금 같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난데없이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작금의 각 당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유력한 차기 후보군이 모두 비박계인데다 김무성 대표의 '개헌론 불가피' 발언이후 친박측의 김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가 반 총장 영입론으로 드러났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야당 역시 당내 주류인 친노계 문재인 의원의 대항마로 반 총장을 끌어들이려는 듯 한 인상을 지울길 없다.
그러나 반총장을 국면타개나 내부 당권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여야의 정략적 발상은 반 총장과 한국 정치 모두에 이롭지 않다.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지 불과 1년 8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다음 대선까지는 3년 이상의 긴 시간이 남았다. 미래의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중대한 문제도 아니다.
정치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갈라질 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에 소통과 화합의 장을 열어야 하고, 경제를 살리고, 후진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쇄신 노력이다. 다자외교의 중심인 유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 미묘한 조직이다. 대륙별, 동맹별 카르텔이나 담합은 국내정치 정파 이상이며 각국의 민감한 정치 사안은 그곳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 된다.
유엔 사무총장이 자국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굿 뉴스'라기 보다는 유엔 수장을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반 총장이 재선되기 직전인 2011년 국내 정치판에서 그를 유력 대선 후보로 언급했을 때 반 총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세력쪽에서 "유엔 수장 자리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며 재선 불가사유로 들이밀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유엔 사무총장을 정략적 이해에 따라 3년 이상 남은 대선과 연계시키는 것은 반 총장 개인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국제사회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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