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작가들이 최근 잇따라 소설을 출간하고 독자들을 만난다. 송재용 소설가의 ‘금강별곡’과 전영학 소설가의 ‘파과’가 그것. 지역에서 만나기 힘든 소설이라 더 반갑다. 젊은 시절부터 수십년 간 소설 창작에 천착해 온 두 소설가의 곡진한 세월이 책 한 권에 담겼다.

 ●송재용 장편소설 ‘금강별곡’

장편소설 3권과 소설집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 온 송재용 소설가가 최근 장편소설 ‘금강별곡’을 발간했다.

작품은 일제 말기인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일제 침탈로 빚어지는 비극적인 상황들이 눈 앞에서 그려지듯 펼쳐진다. 주인공들이 뱉어내는 토속적인 언어들이 감칠맛 난다. 풍자와 해학의 미가 돋보인다.

연옥이 꽃가마를 타고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는 장면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연옥은 오빠와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혼인을 하려던 참이다. 어릴 적부터 연옥을 연모해 온 억수는 꽃가마를 가로막고 연옥의 얼굴을 보려다 연옥의 오빠인 치문에게 인정사정없이 얻어맞는다. 분한 마음에 이를 갈며 집에 온 억수는 상처가 낫자 품을 팔러 다니기 시작한다. 가난한 그에게 가진 것은 연옥에 대한 순정 뿐. 억수는 시집간 연옥의 생일선물로 마른 위어를 주기 위해 노를 저어 금강을 건너가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나룻배의 사공이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처절하고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낸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었던 때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삶은 때로는 광기에 가깝다.

사공 노릇을 하며 억척같이 돈을 벌어 마침내 연옥과 동거하며 사랑을 이루지만 끝내 이별을 맞이하는 억수, 일본 기생과 조선인 남자 사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다 결국 집을 나와 자살로 생을 마치게 되는 연옥, 아내의 출생의 비밀을 숨긴 처남을 살해한 뒤 도피생활을 하다 시집 출간 직전 형사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하고 자결하는 연옥의 남편 상묵,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상묵을 꼬드겨 애를 가졌다가 어머니까지 잃는 수난을 당하게 된 나루터 주막집 딸 행순 등의 기구한 삶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속도감 있는 문장과 긴밀한 갈등 구조가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저자는 충남 부여 출생으로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길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미끼’, ‘불꽃에 사른 치잣빛 굴레’, 소설집 ‘쓰다만 주례사’, 칼럼집 ‘기업 채근담’ 등을 발간했다. 중편 ‘쓰다만 주례사’는 노사화합 드라마 소재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되며 MBC 베스트극장을 통해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현재 충북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채운재. 394쪽. 1만4000원.

 

●전영학 소설집 ‘파과’

전영학 소설가(청주 중앙여중 교장)가 단편소설 9편과 중편소설 1편을 담은 소설집 ‘파과’를 발간했다.

평생 교사로 재직해 온 저자는 학교를 무대로 한 작품들을 통해 학교와 학생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낸다.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작품들은 주로 학교와 학생, 역사, 신을 창작의 모티브로 한다.

표제작 ‘파과’는 사춘기 여고생의 어긋난 사랑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인 여고 3학년생 묘미는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공부도 잘 하지 못하고, 가난한 그녀의 일상은 지겹고 무료하기만 하다. 그런 묘미의 앞에 어느 날, 국어교사 이훈이 나타난다. 이훈은 애벌레에 불과한 그녀를 나비로 만들어 줄 구세주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린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인 이훈과 여고생인 묘미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이훈은 묘미에게서 이성의 감정을 느끼지만 애써 부인한다. 그럴수록 묘미는 애가 타고, 급기야 이훈과 깊은 관계이며 이민을 가기로 했다는 거짓 소문을 내기에 이른다. 결국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제목 ‘파과’는 ‘파과지년’의 준말로 여자 나이 16세와 남자 나이 64세를 이르는 말. 한편으로는 ‘오이꽃이 떨어지는 나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진정한 사람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작품. 등장인물들이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에서의 섬세한 감정묘사가 돋보인다.

이외에도 학교장의 그릇된 욕망과 토호 세력의 텃새로 인한 갈등과 소통의 관계를 그린 ‘까치중학교’, 시골에 사는 사춘기 소년의 성적 호기심과 순수한 사랑을 묘사한 ‘안개꽃 동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충주성에서’와 ‘산성일기’, 종교소설 ‘이 하늘 저 땅’, ‘충주호, 한 모퉁이’, ‘계명산 기도원’ 등 다채로운 단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표지그림으로 저자가 직접 그린 작품 ‘책 읽는 소녀’가 실려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안수길 소설가는 “한과 울분을 가진 약자들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 불합리한 제도와 인습이나 모순과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저자는 충주 출생으로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청주중앙여중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1985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등단했으며 저서로 교육에세이집 ‘솔뜰에서 커피 한 잔’이 있다. 현재 충북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두미. 441쪽. 1만2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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