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충북중앙도서관장)

 
     

철수 씨는 70년대,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공무원이 되었다. 최 말단 공무원이었지만 60을 훨씬 넘긴 아버지는 집안에 ‘공무원’이 나왔다고 꽤나 좋아했다.
훤칠한 키에 성격도 좋은 철수 씨는, 공무원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30년이 넘는 세월, 때론 절망과 좌절에 빠지기도 했고, 때론 보람과 환희에 젖기도 했다.
이제 정년을 얼마 남겨 놓고 있지 않은 철수 씨는 요새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평생 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 영철 씨의 ‘예언’ 때문이다.
평소 말술을 마다 않는 영철 씨가, 요즘은 몇 잔만 마시면 얼큰해서 하는 말에 신경이 쓰인다.
“머지않아 2, 30년 후에는 교직과 공직이 기피업종이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3D업종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철수 씨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도 배고픈 시절에 공직에 들어왔지만 이제까지 긍지를 갖고 살고 있고, 지금도 공직을 선호하는 똑똑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엉터리 예언을 하는가?
지난 해 어느 결혼 전문회사의 배우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기억한다.
여자가 선택한 이상적인 남자 배우자의 직업은 1위가 공무원 혹은 공사 직원, 2위가 일반 사무직, 3위가 금융직, 4위가 교사였고 의사가 5위였다.
또 남자가 선택한 이상적인 여자 배우자의 직업은 1위가 교사, 2위가 공무원 혹은 공사 직원, 3위가 일반 회사원, 4위가 약사, 5위가 금융직이었다.
남녀 모두에게 교사, 공무원이 인기 직업이다.
영철씨의 예언을 이해하기 위한 철수 씨의 고민은 점점 깊어간다.
3D는 위험하고(Dangerous), 어렵고(Difficult), 더럽다(Dirty)라는 의미로,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3D업종 종사자라는 걸 철수 씨는 알고 있다.
하나씩 분석해 본다.
교직, 공무원이 위험하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다.
때로는 선생님보다 더 덩치 큰 아이가 여선생님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한다. 대학 나온 똑똑한 엄마가 선생님을 재판정에 세우기도 한다. 덜 익은 ‘민주시민’이 딸 같은 주민센터 여직원을 울리는 건 뉴스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위험하긴 위험한 것 같다.
교직, 공무원이 어렵다? 그도 그럴 것 같다.
학교 밖에서 보고 배우는 게 많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무시당하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대학에서 배운 교육학 이론은 도대체 먹혀들지 않는다. 나이 먹은 공무원들은 날로 변하는 IT시스템에 적응이 안 된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교직이나 공직이나 정말 어려울 수도 있겠다.
교직, 공무원이 더럽다? 그건 아닐 거라고 굳게 믿어 본다. 하지만 똥, 오줌과 같은 오물 차원의 더러움이 아니라 자존심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연금개혁을 놓고 오랜 기간 배고프게 살아온 공무원들이 마치 죄인처럼 치부된다.
언론기사 한 방에 전후사정도 제대로 안 살핀 채 공직자 목을 날리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나라의 어떤 최고 통치자가 표현했던 ‘못해 먹겠다’는 말의 수식어가 혹시 ‘더러워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무례한 생각도 해 본다.
깊은 고민 속에 철수 씨는 나름대로 확고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교직이나 공직이 더럽다는 생각을 갖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직이나 공직이 3D업종은 아니더라도 기피업종이 될 수는 있다.
그래도 문제다.
배고프던 나라를 배부르게 만드는 데 디딤돌이었고 주춧돌이었던 교육자와 공직자들이다. 교직과 공직이 기피업종, 더 나아가 진짜 3D업종이 되는 날, 대한민국호는 또 한 번 ‘침몰’이라는 참사를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소리 해 놓고 철수 씨는 금방 후회한다. 방정맞은 소리는 하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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