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사회학박사)

 

이 시대의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초등학교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몇몇 친구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도 절실했던 시절, 점심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옥수수 급식 빵을 소중하게 책보에 싸가던 친구나 농사일에 매달린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을 업고 등교해서 교실 맨 구석자리를 차지하던 친구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참으로 계면쩍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였고 IT 강국이 되었으며, 국제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로 어려운 나라에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게다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무상보육과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만큼은 차별받지 않도록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던가? 그런데 최근 예산 떠넘기기로 정부와 지자체, 여당과 야당 사이에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쟁으로 내닫고 있어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현대사회의 놀라운 기술력과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인간이 꿈꿔왔던 삶의 질 향상과 행복권 보장이라는 ‘복지’에 눈을 뜨게 되어 그것을 누리고 추구하는 것이 모든 국가들의 목표가 되었다. 각종 선거 때마다 경쟁적인 복지공약으로 표를 얻으려는 노력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기에 정치권이나 위정자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열망마저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문제는 복지가 국민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하면 어길 수가 없고, 한번 시작하고 나면 국민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그 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제도를 구축하려면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이념적 배경이 분명해야 하고 상당한 기간의 세월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념적 배경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집권 세력에 따라 복지제도 자체의 근간이 흔들릴 위험이 있고 성급한 정책으로 근시안적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려 하면 그 시행착오가 빚어내는 비용이 너무나 커지기 때문이다.
복지에 관련된 업무는 주민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지자체에서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복지행정의 지방이양에 앞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강화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행정이 지방에 이양되면 사상누각의 꼴을 면치 못할 것이고, 중앙정부의 명확한 정책 지침이 없으면 지자체 간 복지수준에 현격한 차이가 발생해 복지제도의 근간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복지제도는 사회 인구학적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여 구축되어야 하며 지속가능한 복지제도의 재원 및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재원 및 인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복지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고, 정치권이 정쟁이나 유권자의 표심에 경도되어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면 그에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며 결국 언젠가는 그 막대한 비용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고령화에 대한 대책 중 가장 중요한 저출산 극복을 위한 무상보육이나, 유일한 자원인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교육의 일환인 무상급식은 중요한 교육복지정책이다. 무상급식은 그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현재는 전국 11,483개 초·중·고교 중 72.7%가 지자체의 형편에 따라 시행하고 있고, 만 3~5세 유아에게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무상 교육·보육제도인 누리과정은 2012년 3월 만 5세를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가 2013년부터 3~4세까지 확대 시행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침체와 저성장 속에서 복지예산의 증가로 재원마련에 어려움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나,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한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의 교육복지에 불어 닥친 갑작스런 변동은 국민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대통령의 대표 복지공약이었던 무상보육이냐 야당이 제안했던 무상급식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이 정책들을 어떻게 하면 적정하게 실행할 수 있을지 여·야 정치권과 정부·지자체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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