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 그대로 시인 가을, 지역 시인들의 시집 발간 소식이 반갑다. 구재기 시인이 ‘추가 서면 시계도 선다’, 류순자 시인이 ‘산을 보다가 길을 잃었다’, 정선호 시인이 ‘세온도를 그리다’를 각각 발간하고 독자들과 만난다.

 

●추가 서면 시계도 선다

40여년 간 교직생활을 하다 현재 충남 서천에서 ‘산애재’를 운영하고 있는 구재기 시인의 17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늘 반복되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빛나는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시를 길어 올린다. 애써 젠체하지 않고 꾸미지 않은 시는 따스하게 독자들의 가슴을 스며든다.

시 ‘구두 한 짝’은 대청소를 하던 어느 날의 풍경을 담은 시. ‘돌아가신 아버지의 낡은 구두’, ‘먼지를 털어내는 나’, ‘역시 낡은 구두 한 짝이 되어 먼지를 뒤집어 쓸 것이라 생각하는 나', ‘내 옷의 먼지를 터는 딸’로 이어지는 구조가 재미있다.

시 ‘뜨거운 달’은 겨울밤 풀빵을 굽는 부부를 묘사한 시. ‘매일 같이 차가운 달덩이를 하나씩 집어/뜨겁게 굴리는 부부’의 생에 대한 진한 열정을 보며 시인은 ‘달빛도 뜨거워질 수’ 있음을 느낀다.

구 시인은 “한때 시인으로서 보다는 차라리 시를 신봉하면서 살아올 것을… 한 적 있었지만 이제 돌아서기에는 너무나 멀다”며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생만큼 걷기로 한다. 그 표치로 시집 한 권을 엮어낸다”고 밝혔다.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구재기의 시에는 저마다의 몸짓으로 저마다의 길을 내는 존재들이 존재한다”며 “추가 서면 시계는 멈춘다는 아주 일상적인 진리를 통해 시인은 제 시계의 추를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걸어가는 존재들의 일상을 표현한다”고 평했다.

구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공주교대, 한남대, 충남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편안한 흔들림’,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 등을 발간했다.

도서출판 지혜. 139쪽. 9000원.

 

●산을 보다가 길을 잃었다

류순자 시인의 시집 ‘산을 보다가 길을 잃었다’는 풍경 같은 시집이다.

그는 마치 펜으로 그림을 그리듯 가슴 속에 새겨진 수많은 시적 풍경들을 시어로 그려낸다. ‘불혹의 바람’, ‘생각의 누드’, ‘꽃샘바람에게’, ‘길 위에서’, ‘새’ 등 10부로 나누어 91편의 시를 실었다. 표지화로 월암 정영남 화백의 작품이 담겼다.

류 시인은 “압박된 마음들을 위안하며 살아오면서 글쓰기는 모든 아픔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며 “이제 한 시대를, 세상의 보물들을 찾으며 고양된 정서와 위안이 되는 시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문효치 시인(전 국제PEN 이사장)은 해설을 통해 “류순자 시인의 시에는 ‘세상의 넓이’ 뿐 아니라 ‘깊이에의 천착’까지 가늠할 수 있는 시인의 내면이 담겨 있다”며 “시인은 풍경에서 건져 올린, 아프지만 깊고 눈부신 말들로 우리에게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준다”고 밝혔다.

류 시인은 1995년 계간 ‘문예한국’ 여름호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회원이며 소월시 기념사업회 이사, ‘문학신문’ 문인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종문화사. 126쪽. 1만원.

 

●세온도를 그리다

정선호 시인이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세온도를 그리다’를 발간했다.

지난 5년 간 해외 근무 차 필리핀 등 외국에서 생활해 온 그의 이번 시집에는 이국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야자나무에서 ‘해와 달의 슬픔과 바람의 흔적’을 만나고, 필리핀 루손선에서 그림을 그리며, 추사가 유배지 탐라에서 그린 세한도를 떠올린다. 근대 이후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지내온 필리핀에 동질감을 갖고 그 속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는 작품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 시인은 “계속되는 해외 생활로 인해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그 감상을 적었다”며 “한국과 전혀 다른 자연 환경과 정서를 가진 필리핀에서는 자연의 소중함과 우주의 생성 등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고명철 광운대 국문과 교수는 “정선호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바람’과 동행한다”며 “시인의 삶과 시가 무관할 수 없듯, 어떤 한 곳에 붙박힌 삶이 아닌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이방의 삶을 성실히 살고 있는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상한다”고 밝혔다.

정 시인은 1968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창원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내 몸속의 지구’가 있다.

푸른사상. 135쪽. 8000원.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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