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카톡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후배가 보낸 글의 서두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화장품 장사를 시작했어요.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러니 꼭 한 세트만 사 주세요. 부탁드려요~.’

‘이게 무슨 소린가. 이친구가 이렇게 궁색해졌단 말인가 ?’ 놀란 토끼눈이 되어 그 다음을 읽어 내려갔다. 그제야 후배의 깊은 뜻을 알아채고 휴 한숨이 나왔다. 화장품 장사가 나쁜 게 아니지만 그 후배와 화장품 장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글을       옮겨 보면

☆제품 사용 설명서☆

  주름이 생긴 이마에는 "상냥함" 이라는 크림을 사용해 보세요. 이 크림은 주름을 없애주고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니까요.

  입술에는 "침묵" 이라는 고운 빛의 립스틱을 발라 보세요. 이 립스틱은 험담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예쁘게 바로 잡아주는 효과도 있답니다.

  맑고 예쁜 눈을 가지려면 "정직과 선함"이라는 안약을 사용해 보세요.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면 어디를 가든지 그 안약을 소지해야 한답니다.

  피부를 곱게 하고 싶으면 "미소" 라는 로션을 바르면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며 거울을 보고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피부 영양제 화장품은 "묵상" 입니다. 아주 효능 좋은 피부 청결용 세안 비누는 "회개" 가 최고라고 합니다. 아, 참~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는 "기도" 가 제일이랍니다. 마음에 드시면 한 세트 꼭 구매해 주실 거죠^^ 품질은 보장합니다!!

  글을 끝까지 읽은 후에야 긴장했던 내 표정은 풀려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누가 지은 것인지 참 기발한 생각이요, 아이디어다.

  주름에는 ‘상냥함’ 이라는 크림을 바르라고 했지. 주름을 없애겠다고 보톡스를 맞고 주름 성형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나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는데 상냥함이야말로 어떤 화장품보다 효과를 볼 것은 분명하다. 상냥한 사람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마주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을 테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입술에는 침묵을 바르란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침묵하게 한다.’ 쇼팬하우어의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그 홍수 속에는 좋은 말이 수도 없이 많건만 거친 말, 상처 내는 말, 비웃는 말, 욕설 같은 강하고 상스러운 말이 늘어나고 자극적인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해 하는 언어폭력 병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은 불신의 늪으로, 단절의 수렁으로 빠지는 길이기에 우선 말을 줄여야 하고, 험담과 원망이 아닌 좋은 말만 골라 쓰기도 바쁠 것이다.

  ‘정직과 선함’은 인생의 기본이다. 인생이라는 집을 지을 때 맨 밑에 놓아야 할 주춧돌 같은 것이다. 정직과 선함은 자신을 떳떳하게, 누구와도 자신 있게 눈을 마주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그 눈은 분명히 맑고 빛날 것이다.

  ‘미소’ 참 아름다운 말이다. 소리 내어 웃는 웃음보다 신중하고, 침묵보다 맑고 밝으며 신비하기까지 하다. ‘만일 이 세상이 눈물의 골짜기라면 미소는 거기에 뜨는 무지개’ 라는 유태 격언이 생각난다. 무지개 같은 미소는 정신의 음악이며 인생의 약이라고 했다.

 


  ‘묵상’ 이야말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요, 기회이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남을 자세히 보는 시간 보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은 소홀하다. 묵상의 시간만이 내가 나를 보는 시간이다. 내가 나를 바로 볼 때 ‘회개’도 ‘기도’ 도 이루어 질 수 있다. 교만 중에 가장 무서운 교만은 기도하지 않는 교만이라고 했다. 기도는 신 앞에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는 것이니 교만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준다.

   초록으로 물결치던 정열을 식히고 곱게곱게 마지막 말을 쏟아 놓던 나무들도 모든 욕심도 번뇌도 벗어버리고 나목으로 서서 하늘 우러러 기도를 시작했다. 밖으로 분출하던 에너지를 안으로 안으로 모아들여 갈무리 할 계절이다.

  외모를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가꾸고 다스리면 저절로 외모는 아름다워질 것이니 마음의 화장품 한 세트 사서 열심히 바르련다.

  상냥함. 침묵. 미소. 묵상. 기도. 회개 하나하나 또박 또박 다시 가슴에 새기며 되뇌어 본다. 곧 하얀 눈이 내려 마음 밭에 소복소복 쌓일 것만 같은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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