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오인태(‘시가 있는 밥상’)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 동안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원망하는 마음이 더 심했었다고 한다. 든든하게 뒤를 봐주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주는 아버지였기에 아버지를 원망하였다고 한다. 자갈논 몇 마지기라도 물려주지도 못하고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물러주지도 못했다면서 아버지에 대한 무능과 섭섭함이 매우 컸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사십을 넘어 자신의 자식들이 다 성장할 무렵에야 비로소 아버지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이미 지나가버린 아버지의 인생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런 아버지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겨주신 새로운 자원을 찾아낸 것이다.

“아버지 아니 우리 부모님은 내게 아주 많은 걸 유산으로 물려주신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게 어디에서도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기 펴고 살 수 있는 독립심과 당당함을 주셨다. 나쁘지 않은 머리를 주셨다. 멀쩡한 사지를 주셨다. 잘 생기지는 못해도 남한테 불쾌감을 주는 정도는 아닌 얼굴을 주셨다. 그리고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남을 이겨야 한다고 윽박지르지 않으셨다 … 무엇보다 어머니는 생명에 대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주셨다.

무욕의 마음을 주셨다. 늘 ‘사람한테 못할 짓 하지 마라.’ ‘잘했다. 그 정도면 됐다.’고 말씀하셨다.”(오인태, 앞의 책 ‘과분한 유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외모, 능력이 부족하다고 불평을 한다. 무엇보다도 부모로부터 물질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원망한다. 부모 또한 물질적인 지원만이 소중한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는 부모나 자식에게는 희망을 기대하기 힘들다. 아무리 부모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해도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부모로부터 받은 자원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꿈과 희망이 열린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다고 미리 포기해버리는 것은 삶을 포기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많아 보여도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원은 남아 있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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