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희(침례신학대학 교수)

 

아들은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 닮을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의 걸음걸이라던가, 기침소리, 또 웃을 때 콧등을 찡으리는 것처럼 아버지가 할 만한 어떤 모습들을 닮을만치 바라볼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었다. 어린 날 아버지는 손님처럼 다녀가는 사람이었고, 한국동란 때 북으로 넘어가 버린 뒤로는 사상범 아들이라는 족쇄로나 남았기 때문, 소설가 김원일의 이야기이다. 칠십이 넘도록 글을 쓰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여러 소설들에서 조금씩 그려내더니 이번에는 전모를 그려내고 싶어진 모양이다. 칠십 넘게 나이든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인가. 아들을 세상에 데리고 왔을 뿐 아주 어릴 때 몇 조각 기억만 남겨준 채 사라져 버렸다면. 칠순 넘은 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들어 먼저 유년의 그리움을 담게 될까.  

 김원일의 『아들의 아버지』는 자전적인 한 집안 이야기이지만 처절했던 한 시대가 담겼다. 일제 말에서 한국전쟁까지 함께 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왜 그렇게 가족들에게는 무심하고 밖으로 돌았던가. 밖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복원해 내는 것이다.  유년이었던 당시 기억만으로 아버지의 전모는 알 수 없다.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과 당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동원해서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째서 월북을 선택해야 했는지, 북에서는 또 어떻게 살았는지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다. 이 장편 소설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세 가지 형식을 활용하는데 “해방과 전쟁 사이의 시대적 공간을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르포식으로 기술한다. 아버지의 생애와 내 유년을 사실대로 반영한다. 아버지를 형상화하는 부분은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당신과 헤어져 토막기억 밖에 남은 게 없기에 여러 장면을 추측과 허구로 만들어가보자, 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유복한 집안 곱상한 외모의 외동아들이었고, 일본 유학을 다녀와 수입 좋은 직장까지 있어 평탄하게 살 만 했지만 시대의 저격을 받았다고나 할까. 사회주의를 식민현실 타개 대안으로 기대한 당대 지식인들처럼 사상에 휩쓸린다. 아버지가 민족을 생각하는 동안 가족은 방치되고, 일제의 검거와 고문 속에서 야반도주도 해야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늙은 할머니와 어린 자식들을 맡겨둔 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기도 하고,  집에 데려다 놓은 여자 밥을 어머니가 차려대게도 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시대 명제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모두 적시해서 아버지 전모를 복원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본 아버지 삶은 한 시대 실패한 지식인의 전형성을 띠기도 한다.

순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친절한 역사의 사실들은 아버지 행적과 관련되는 중요 배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 배경은 아들에게 아버지 이야기에서 원경이 아니다. 인물보다 시대가 주인공이 되는 급박한 시대였다고 보는 것이다. 시대가 주인공이 되어버리면 개인의 일상이 사치로 규정되는 비극이 떠돌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래 유령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월북 전에는 밖으로 떠돌아 이름만으로 존재하고, 월북 뒤에는 남쪽에 남은 가족들에게 사상범 가족이라는 굴레로나 존재하는 그늘이기 때문.

 


그 아버지를 칠순이 넘은 나이에 작가는 어째서 그려내야 했을까. 무엇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어이 꺼내들도록 했을까. “누구도 그 자리에 대신 앉을 수 없는 내게는 유일무이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아버지 탄생 100돌에 맞추어 북녘땅 어느 뫼에 묻혀있을 뼛조각과, 불행한 시대의 어둠 뒤편으로 사라진 서러운 영혼에게 바쳐져야 함이 마땅‘하겠다고. 누구도 아닌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부자간의 유일무이함을 대신할 그 어느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일이기 때문에. 아들 나이가 칠십을 넘었더라도. 무엇보다 아들은 이야기들의 빈 자리를 채워 넣어 완결 짓는 소설가이고 보면. 아버지 이야기 복원은 유령같은 아버지에게 형체를 갖춰주는 일, 아버지 없이도 헌헌장부로 서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리워서 복원해 내는 일은 칠십이 아니라 팔구십 백살이 되어도 그래서 절실하고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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