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현정부 '비선 실세'로 거론돼온 정윤회 씨가 청와대의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 등과 만나면서 국정에 개입했다는 세계일보의 28일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강력히 부인하고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보도의 근거가 된 청와대 내부 문건의 실체에 관심이 쏠린다.

이 신문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 사진까지 공개하며 정 씨가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 비서관 3명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와 정기적으로 만나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및 청와대 내부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한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감찰보고서'라는 얘기다.

   반면 청와대는 문건에 나온 내용 자체가 시중의 풍문과 풍설을 다룬 이른바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 나온 내용을 모아놓은 것으로, '팩트'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결국 이 문건이 '사실'에 근거를 둔 공식문건이냐, 아니면 단순히 루머를 모아놓은 참고자료 수준이냐에 따라 이번 파문의 확산과 진화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공직기강의 감찰 결과" vs "찌라시 짜깁기한 문건" = 이 문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비서관실에서일했던 경찰 출신 전직 행정관인 A경정에 의해 작성됐으며, 경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외부로 유출됐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문건이 과연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다.

신문은 이 문건을 '감찰 보고서'로 규정, 정 씨의 국정 개입이 청와대 자체 감찰 결과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건에 작성 주체를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명기해 놓은 것이 이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친인척·측근 관리가 주업무인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만큼 내용을 사실로 믿을만한 추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문건에 정 씨와 '십상시'의 회동 장소와 십상시 멤버들의 실명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된 점도 이러한 판단의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신문은 지난 24일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에서는 정 씨에 대해 감찰을 실시한 바 없다"고 밝힌 것도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건 제목에 나온 것처럼 이 문건이 풍문을 전하는 '동향보고서'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이 찌라시를 근거로 보고서를 작성했을뿐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필요하면 (회동이 이뤄졌다는) 그 장소에 가서 취재하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울러 문건에 나온 일부 문장이 '…를 지시하기도 한다 함', '…를 지시 하였다 함' 등 '전언' 형식을 빌렸다는 점에서 문건 작성자가 어디선가 귓동냥한 얘기를 보고서에 옮겨놓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윗선 보고 때 문건 활용 여부 = 이 문건이 청와대 윗선으로의 보고에 활용됐는지 여부도 관심이다.

신문은 "당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은 A경정 등이 보고서를 작성해오자 이를 직속 상사인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다"며 "이후 조 비서관은 홍 수석 보고를 마친 뒤 김기춘 비서실장을 만나 대면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해당 문건이 '공직기강비서관→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이어지는 보고계통을 거치며 정식 보고서로 활용됐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조 비서관이 당시 김 실장에게 보고서 형태의 보고가 아닌 구두로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비서관이나 수석은 실장에게) 수시로 구두 보고를 한다"며 "(문건에 나온 내용이) 풍문으로 돈다는 것을 구두를 통해 보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어떤 조치 취했나 = 김 실장이 이 문건 내용을 보고받은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도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신문은 감찰 결과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 확인되지 않는데다 문건 작성 이후 실무진의 인사조치로 감찰이 중단됐다며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보고서 작성 시점인 지난 1월6일로부터 한 달 뒤 A경정이 '좌천성 원대복귀'를 했고, 그로부터 두 달 뒤에는 조 비서관이 사표를 썼는데, 보고과정에서 문건이 유출돼 정 씨 측으로 흘러갔을 수 있고 결국 인사조치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한 것.

하지만 청와대는 문건에 나온 내용이 맞는지에 대해 문건에 실명이 거론된 당사자를 상대로 이날뿐만 아니라 비서실장이 첫 보고를 받은 시점까지 2차례 사실 확인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민 대변인은 "조사라고 얘기하기 뭐하지만 확인을 했을 것"이라며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해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이 문건을 '찌라시'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또 A경정의 원대복귀에 대해서는 "인사는 수시로 있고, 통상적인 인사였다"고 덧붙였다.

민 대변인은 김 실장이 문건에 담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 방식에 대해서는 "(진상파악을) 지시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본인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문건 내용에 대한 감찰 등 공식적인 절차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아는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처럼 문건의 성격, 보고 활용 여부 등 실체를 둘러싼 언론과 청와대의 주장과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청와대가 이번 보도에 대해 고소장 제출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함에 따라 진실은 향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신문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비선라인이 정부 최고위층인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것이어서 현 정부 최대 스캔들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의 반박이 맞다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말단 행정관이 단지 찌라시의 내용을 청와대 보고서 형식으로 옮겨놓은 것이 외부로 유출되며 벌어진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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