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사업비 폐지 공언…의정비 인상 후 침묵

“재량사업비 전향적 폐지 검토” 공언
의정비 인상 이후 침묵…내부적으로 결정키로
도의회 대변인조차 “이 의장 사견”…권위 훼손

 

재량사업비 폐지를 위해 앞장서겠다던 이언구 충북도의회 의장이 의정비 인상 강행 이후엔 좀처럼 말이 없다.

이 의장은 지난 달만 해도 “재량사업비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제는 재량사업비 폐지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밝혔다.

도의회 내부적으로 재량사업비 폐지를 공론화, 의원 설득을 통해 폐지를 유도해나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의장은 이에 따라 지난달 12일 전체 의원 연찬회를 열어 재량사업비 폐지 문제를 끄집어냈으나,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10분 만에 논의를 끝냈다.

이 의장은 당시 이 자리에서 "사회단체 등이 재량사업비를 선심성 예산, 의원의 쌈짓돈 쯤으로 간주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폐단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다른 시·도 의회처럼 폐지하는 게 좋겠다"고 발언했으나 대부분 의원들이 내부적으로 찬반 입장을 정리한 후 다시 논의하자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이에 따라 8일까지 의원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 재량사업비 존폐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도의회는 비난 여론을 외면한 채 전국 최고 인상폭의 기록을 세우며 의정비 인상을 강행했다.

이후 이 의장의 공식적인 재량사업비 폐지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1일 기자실을 찾은 이종욱 도의회 대변인은 재량사업비 존폐를 의원들의 의사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재량사업비 폐지론은 이 의장의 사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도의회 대변인조차 의장의 공언을 무시한 것으로, 이 의장이 도의회 내부적으로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끄집어 내놓고, 마무리도 하지 못하는 이 의장의 행태에 대해 도의회 안팎에선 “스스로 의장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교로운 일인지, 의도적인 일인지는 짐작이 되지만 이 의장이 재량사업비 폐지론을 들고 나선 시기가 의정비 대폭 인상을 요구한 시점이다.

이 때문에 도의회와 충북도 안팎에선 재량사업비 폐지와 의정비 인상을 맞교환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집행부 입장에서도 연간 100억원이 넘는 재량사업비를 폐지할 경우, 가용 예산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의정비 인상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도의회 내부적으로도 의정비 인상 추진 기간 동안엔 재량사업비를 존치해야 한다는 강경론보다는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이 의장의 행태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이 의장이 의정비 인상 강행에 대한 비난 여론을 완충시키기 위해 재량사업비 폐지 공론화를 앞세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치고 빠지기’ 식 정치적 술수를 부렸다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이 의장이 도의회 내부적으로 권위와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는 바람에 도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재량사업비 폐지 공론화가 실패하자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어느 해석이 맞든, 의정비 인상 강행과 재량사업비 폐지 불발의 책임은 도의회 수장인 이 의장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의장에 대한 사퇴 요구 증폭과 향후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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