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최근 드라마 미생(未生)의 인기가 장안의 화재이다. 이 드라마는 2012년 1월 17일부터 2013년 8월 13일까지 포탈사이트에 연재된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동명으로 각색한 드라마이다. 미생에서는 프로 바둑기사 입단이 좌절된 후 원 인터네셔널이라는 종합상사에 입사한 장그래의 시각에 비춰진 직장과 직장인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장그래는 고졸 학력이 전부인 흔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팩을 갖추지 못한 젊은 신입사원이다. 게다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사원이다.

원 인터내셔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우리네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상식과장은 일중독에 시달리면서도 합리적이고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고뇌하고 있고 김 대리는 장그래의 사수로서 사람이나 사내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다. 한편 표리부동하고 음흉하여 결국 회사에서 사고를 치는 김 과장도 있고 오로지 승진과 실적에 몰입한 나머지 사람에 대한 냉혹한 태도를 가진 최 전무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임에도 육아와 가사의 한계에 부딪히는 선 차장도 있고 능력 없는 마초들 틈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발붙이고 살아가려는 안영이도 있다.

한 편의 드라마 속에 우리 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는 양상들이 꼼꼼히 그려져 있다. 정규직과 계약직, 동료애와 냉혈함, 가부장 중심의 마초와 여성 직장인, 자기 일에 성실한 원칙 주의자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표리부동함이 회사라고 하는 숨 가쁜 현장에 녹아 있다. 때로는 고졸 계약직인 장그래의 우직함과 통찰력이 완벽한 스팩을 가진 대졸 신입사원을 능가하고 마냥 합리적인 것만 고집하여 번번히 손해를 보는 오 과장이 회사 내 불합리함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직장과 사회가 마냥 각박하지만은 않다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서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은 여전히 척박하고 각다분하기에 또 다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모를 성공과 희망들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다.

바둑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만 미생이란 말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죽은 상태인 사석도 아닌 바둑의 진행 상황에 따라 완전히 살 수 있는 바둑돌의 상태를 말한다. 완전히 살아있는 상태 즉, 완생이란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살 수 있는 상태이다.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자면 미생에서 완생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바둑에서 치열한 전투와 방어를 치르면서 완생 즉, 완전한 두 집을 가져야만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마가 잡히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완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선과 악이 뒤범벅된 직장을 그려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다들 그들의 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미생들의 모습이다. 진정한 완생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완생이란 홀로는 불완전한 바둑돌이 서로 이어지고 의미가 부여되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늘 다사다난한 세월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절망적인 일들이 많았고 사회는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단지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아닐 터이다. 진정 불행한 것은 노력을 해도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며 내가 어려울 때 손 내미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이야기처럼 우리 주변에 비합리적이고 원칙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여길 수도 있다.

우리가 드라마 미생에서 위로 받고 있는 것은 장그래가 그러하듯 마냥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미생이다. 바둑에서 두 집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몸부림치듯 사회라는 큰 바둑판에서 미생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가 함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완생이고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완생의 희망 속에 아름다운 미생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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