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이 풍파를 겪고 있는 가운데 재계 전체도 이번 일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일로 자칫 반기업·반재벌 정서가 확산되면 가뜩이나 대내외 경제 환경도 좋지 않은데 기업들로서는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삼아 운행 중인 비행기를 되돌리는 초유의 사건이 알려진 이래 한주 내내 비난 여론이 들끓은 데 이어 급기야 12일에는 재계 9위인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이 "저의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개를 떨궜다.

이번 사건의 추이를 예의주시한 재계 관계자들의 전반적 기류는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자사 위기관리 시스템을 돌아보는 한편 국민 여론의 엄정함을 되새기고 몸을 더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느낀 가장 큰 교훈은 오너에게 '네네'만 하면 판단 착오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대한항공이 처음 사과문을 발표할 때에도 오너가 홍보라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화를 키운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은 사건 초반 국면에 공식 입장자료를 내놓고 승객에게 사과했지만 조현아 부사장의 잘못을 겸허히 사과한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서 쫓겨난 사무장에게 잘못이 있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탓에 오히려 역풍을 일으킨 바 있다.

이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사과문이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크레인으로도 막지 못했다는 것이 대다수 기업 홍보 담당자들의 생각"이라며 "대한항공 홍보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사과문을 준비할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너는 외부의 여론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상시에 오너에게 소신있게 직언하고, 오너가 홍보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홍보 담당 임원은 "이번 일로 국민 여론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며 "최근 들어서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가치와 윤리에 연동돼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 관계자와 재벌들도 이런 여론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일로 재계 전체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질까 우려된다며 "경제 상황도 어려운데 하루빨리 사건이 마무리돼 대한항공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잘못의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에 앞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적절하냐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대기업 임원은 "불혹을 넘긴 다 큰 성인 자녀의 행동에 대해 아버지가 TV 생중계로 사과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임원은 이에 대해 "시집간 딸이더라도 아버지 회사에서 책임을 맡고있는 만큼 아버지가 대신 사과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조양호 회장이 며칠 전 해외출장에서 귀국할 때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켰다'고 사과했으면 국민 정서상 논란이 좀 더 빨리 수그러들 수 있었는데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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